구약성서연구 제9강 : 왕을 세우지 않았던 이스라엘

구약성서연구 9강

왕을 세우지 않았던 이스라엘 (여호수아, 사사기)

여호수아서와 사사기는 이스라엘의 가나안땅 정착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모압평원을 가로질러 요단강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른다”는 땅으로 가는 길-그 길이 묘사되어 있는 책이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이다. 그러나 두 책을 읽어보면 “어떻게 해서 잇라엘이 가나안 땅에 살게 되었는가 ?”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서로 달리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호수아서가 묘사하는 가나안땅 정착과정은 단번에 이루어진 일종의 군사정복이다. 총사령관 여호수아의 지휘아래 12지파들이 일치 단결하여 가나안의 성주(城主)들을 무찔러 간 전쟁의 열매이다(수 1-12장). 승전의 열매로 여호수아는 각 지파들에게 정복한 땅을 공정하게 분배해 간 결과, 이스라엘의 각 지파들은 가나안 땅 여기저기에 설게 되었다(수 11:23, 13:8-19:51). 여호수아서의 이 기록들만 읽다 보면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 이주는 어디까지나 군사정복의 결과이다. 사사기는 이와 다르다. 사사기 1장을 읽어보자. 사사기 1장이 묘사하고 있는 그림은 이스라엘의 사람들이 가나안 원주민들과 같이 살고 있었던 광경이다. 아니 가나안 원주민들의 땅에 엉거주춤 더부살이 형식으로 들어가 눌러 앉는 식의 장면이다. 12지파가 총동원해서 가나안 땅의 각 성읍들을 쳐들어가지 않는다.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가 각자 서로 다른 시기와 경로로 가나안 땅에 삶에 둥지를 틀고 있다. 치밀한 군사 작전의 성공에 의해서가 아니라 “비집고 들어가기”의 결과로 얼마간 땅을 차지하였다. 일순간에 이루어진 “정복”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침투”의 결과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에서의 삶을 가져다 주었다. 여호수아의 증언을 “군사정복설”이라고 부른다면, 사사기의 증언은 “평화적 이주설”에 가깝다. 여호수아서의 증언과 사사기의 증언 중 어느 것이 보다 역사적으로 사실에 가까울까?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 정착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학자들의 연구를 살펴 보면,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 정착의 과정에는 또다른 개연성이 존재한다. 군사정복설, 평화이주설, 그리고 가나안 봉건 영주들에게 대항하던 농노들의 혁명의 결과가, 이집트에서 나온 히브리인들의 가나안 땅 차지를 용이하게 해주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일종의 혁명설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이론인데, 이집트를 나온 히브리인들과 가나안 땅에서 농노로 고생하던 사람들이 연합하여 혁명으로 봉건 영주들을 몰아내고 가나안 땅에 나라를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가설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면 구약성서가 가나안 땅 정착과 관련하여 하나의 소리만 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의 논의와 관련하여서 흥미있는 것은 여호수아서나 사사기 모두 이스라엘이 막 가나안 땅에 살게 되었을 때, 그들에게는 왕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니 왕이 있을 필요가 없었다. 가나안 땅 정착 초기의 이스라엘의 삶은 억압이나 지배를 받지 않는, “자유 이스라엘”의 모습, 그 자체였다. 이 시기의 지도자들을 구약성서의 사사기는 “사사들(쇼프팀)” 또는 “나기드”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사사란 이스라엘이 위기에 몰릴 때, 하나님에 의해 잠시 세워진 전사이다. 위기가 지나면 사사는 다시 원래의 자기 자리로 되돌아 간다. 그 때 사사직은 결국 임시직인 셈이다. 하나님의 영(charisma)이 있어야 지도자 노릇을 할 수 있었던 제도였다. 사사기에는 모두 네 번에 걸쳐 “이스라엘에 아직 왕이 없었을 때”라는 구절이 나온다(삿17:6, 18:1, 19:1, 21:25). 왕이 없었기에 외적의 침입 앞에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었다. 왕이 없었기 때문에 지파간의 결속도 잘 다져지지 않았다(삿 5:15-17). 왕이 없었기에 사람들은 만행을 저질렀다(삿 19:1).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이스라엘에게는 왕이 없었다. 아니 왕으로 세움 받기를 단호히 거부하였다. 기드온 이야기 (삿 6-8장)는 이 점을 극명히 드러낸다. 미디안의 침입을 성공적으로 물리친 기드온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이 제안하였다. 삿 8:22-23 읽기 !

“나는 여러분을 다스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주께서,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무슨 소리인가?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여호와가 왕이신데 무슨 왕이 필요하냐는 다짐인 것이다.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백성들의 요구를 틈타 외가의 세력을 업고 자기 형제들을 다 죽인 후 왕이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삿 9:1-6). 하지만 아비멜렉은 오래가지 못한다. 훗날 데베스 성읍을 점령하러 나섰다가 망대에서 한 여인이 내리던진 맷돌 위짝에 두개골이 깨져 크게 상처입고 죽고 만다(삿 9:50-55). 아비멜렉이 저지른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셨던 것이다(삿 9 :56). 그리고 나서 이스라엘은 다시 사사들의 돌봄을 받는 시대를 살게 된다.

똑같은 표현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신다는 사상은 여호수아서에서도 강하게 새겨져 있다. 여호수아의 지위는 사사들의 원초적 모습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전쟁에서의 용사요, 하나님의 가르침을 대변하는 판관이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시기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며 따르기에,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살 수 있었음을 증언하는 책이 여호수아서라고 말할 수 있다. 자칫 군사정복의 필치로 채워져 있다는 점은 여호수아서가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섬기는 백성이 차지할 상급을 묘사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담겨있다. 여호수아서 12장을 읽어 보면, 모세가 정복한 왕들(여호수아 이전의 리더인 모세도 가나안 정복을 함께 한 인물로 본다고 이해하면 됨)은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과 바산 왕인 옥이다(수 12 :1-6). 여호수아가 정복한 왕은 여리고, 아이, 예루살렘, 헤브론, 라기스, 베델, 돌, 길갈, 디르사 등 모두 서른 한명이다(수 12:7-24). 여기에 소개되고 있는 왕들은 가나안 각 성(城)의 성주들이다. 왜 정복한 왕들의 명단이 소개될까? 모세와 여호수아의 군사작전의 성공을 칭찬하기 위해서 일까? 여기에서 그 시대 가나안의 성의 모습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발을 들여놓을 당시, 가나안 사회에 있던 성이란 왕궁과 성전이 있고, 왕의 군사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일반 백성들은 다 성 밖에서 살았다. 주전 13, 14세기 경의 가나안 사회는 약 30여개의 봉건 국가와 약 30여명의 봉건 영주, 그리고 그들이 거느린 많은 농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성을 쳤다는 것은 성주와 그 부하들을 쳤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만약 이런 추정이 맞다면,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싸운 상대는 가나안 봉건 성주들(왕들)과 그 부하들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가나안 원주민들과 싸운 것이 아닐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여호수아 12장을 읽어보면, 이것은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즉 왕이 없던 이스라엘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사회 이스라엘)이 왕이 있던 사회(가나안의 성읍)를 정복해 간 것이다. 왕없는 민족에게 왕있는 민족이 맥을 못추는 현상이 발생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편이시기 때문이다. 즉 여호수아 12장의 정복당한 왕들의 목록은 왕의 무능함에 대한 고발이다. 훗날 이스라엘 장로들이 사무엘을 찾아와 “모든 이방 나라들처럼, 우리에게 왕을 세워달라”(삼상 8:5)고 요청하지만, 그 이방 나라의 왕이란 이렇게 하나님의 충실한 심부름꾼(여호수아) 앞에서는 아무 짝도 쓸모 없다는 것을 알리는 기록이다. 그러기에 여호수아 12장의 명단은 사무엘상 8장 5절에 대한 하나의 복선(伏線)인 셈이다. 왕들을 정복한 여호수아와 그 백성들은 이렇게 다짐한다. 여호수아 24 :1, 15, 16-18 를 읽으며 맺자.

[출처] 구약성서연구 제9강 : 왕을 세우지 않았던 이스라엘 (파리중앙교회) | 작성자 Pasteur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