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끄시는 분을 따라
본문 : 창세기 45:3-11, 15, 고린도전서 15:35-38, 42-50, 시편 37:1-11, 누가복음 6:27-38
【창세기 45:3-11, 15】
« 내가 요셉입니다!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다고요? » 요셉이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으나, 놀란 형제들은 어리둥절하여, 요셉 앞에서 입이 얼어붙고 말았다. « 이리 가까이 오십시오 » 하고 요셉이 형제들에게 말하니, 그제야 그들이 요셉 앞으로 다가왔다. « 내가,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 넘긴 그 아우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아 넘기긴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 땅에 흉년이 든 지 이태가 됩니다. 앞으로도 다섯 해 동안은 밭을 갈지도 못하고 거두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형님들보다 앞서서 보내신 것은, 하나님이 크나큰 구원을 베푸셔서 형님들의 목숨을 지켜 주시려는 것이고, 또 형님들의 자손을 이 세상에 살아 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리로 보내셔서, 바로의 아버지가 되게 하시고, 바로의 온 집안의 최고의 어른이 되게 하시고, 이집트 온 땅의 통치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이제 곧 아버지께로 가셔서, 아버지의 아들 요셉이 하는 말이라고 하시고, 이렇게 말씀을 드려 주십시오. ‘하나님이 저를 이집트 온 나라의 주권자로 삼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지체하지 마시고, 저에게로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아버지께서는 고센 지역에 사시면서, 저와 가까이 계실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버지의 여러 아들과 손자를 거느리시고, 양과 소와 모든 재산을 가지고 오시기 바랍니다. 흉년이 아직 다섯 해나 더 계속됩니다. 제가 여기에서 아버지를 모시겠습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집안과 아버지께 딸린 모든 식구가 아쉬운 것이 없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하고 여쭈십시오.
요셉이 형들과도 하나하나 다 입을 맞추고, 부둥켜 안고 울었다. 그제야 요셉의 형들이 요셉과 말을 주고받았다.
-인사말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룩한 주일을 맞아서 주 앞에 나온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날씨도 이제는 약간씩 풀려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주안에서 사는 보람을 느끼는 일이 우리에게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모두 힘내십시오.
자, 인사 나눕시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서로에게 인사를 따뜻하고 친절한 전하십시오.
-사람, 요셉
오늘 우리가 마주 대하는 본문은 한 사람의 인생을 다루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인 요셉이라는 인물의 살아온 인생의 궤적이라고 할까요? 그 중에서도 요셉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어떤 특정한 순간의 사건을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으로 택하여 읽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요셉이라고 하는 인물에 대해서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창세기에는 주요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11장의 바벨탑 사건이 끝나고 나면 12장부터 등장하는 주요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으로 이어지는 한 가족의 이야기가 12장부터 50장까지 이어집니다. 꽤 길지요? 창세기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30장 후반부터 등장하는 인물, 요셉의 이야기, 그중에서, 그의 인생에서 오늘 한 부분만을 읽었지만 그의 인생의 가장 특별한 한 장면이 오늘 말씀입니다. 요셉, 그의 이름 뜻이 “하나님이 더하신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의 이름 뜻처럼 하나님이 그의 인생에 무엇을 더하시는지 우리가 신앙적으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요셉만큼이나 귀중한 여러분 각자의 인생에 하나님이 간섭하시는 바를 감사로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일생이란
저는 제가 가진 ‘목사’라는 직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사람을 지켜보는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사람을 관찰하고 사람을 살피고 사람에게 의미를 찾고 이런 일입니다. 그런데 그래도 여전히 사람은 ‘미스테리’입니다. 사람의 일생이란 참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떤 시대에 사는지, 어떤 가족 관계를 유지하는지, 얼마큼 사랑받고 보호받고 성장했는지 각양 각색의 조건과 상황에 따라 사람은 참 다르게 성장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요셉이라는 인물의 일생도 참으로 소중하고 그의 일생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만큼이나 오늘 여기 앉아계신 여러분의 일생도, 각 사람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하고 귀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일생이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조건과 상황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오늘 요셉 가족에게 벌어진 일을 한 번 보십시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하면, 한 마디로 말하면 형들이 거짓으로 작당하고 모의하고 꾸며서 동생 요셉을 낙타를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하는 상인들에게 팔아버린 사건입니다. 그냥 성경에 등장하는 ‘옛날 이야기’려니 여기면 아무런 이야기도 아닌 것처럼 넘겨 버리겠지만 오늘 여러분의 가정에서, 혹은 여러분 주변에서 이와 같은 이야기가 벌어졌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일이 오늘 벌어진 일의 시초입니다. 어쩌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아버지의 야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편안하고 안락하게 일생을 산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추측하자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요셉, 그의 인생에 크나큰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전에 ‘그것이 알고 싶다’는 탐사 취재 프로그램을 시청한 일이 있습니다. 그 때, 그 프로그램의 주제가 무엇이었는가 하면 여러분도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형제 복지원’ 사건입니다. 1980년 군사 정권이 들어서자 사회 정화 작업이 벌어졌습니다. 길거리 부랑인들, 장애인들, 고아들을 수용소 같은 곳에 몰아넣고 강제 노역을 시키고, 폭행하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이 죽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강제 노동을 시켜서 생산된 물건을 팔아 큰 부자가 된 사람도 있었지만 한편 억울하게 끌려와서 십 수년의 인생을 고스란히 폭력과 강제노동에 빼앗긴 억울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자신의 억울함을 밝혀 달라며 한 피해자가 자신의 처지를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 시선을 끈 것은 이 사람이 1980년 초, 10대 초반의 나이에 부산역에서 길을 잃었는데 그곳에서 구걸하는 고아로 취급 받아 이 ‘형제 복지원’이라는 시설에 끌려갔다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80년대 그 때 저도 부산에 살고 있었고, 친구들이랑 부산역 주변에 자주 놀러 다녔었거든요. 등골이 오싹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라고 예외일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저 역시 부산역 주변에서 놀다가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됐을까? 두렵지요.
요셉에게 벌어진 사건 역시 이런 우연 같은 상황들과 악한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의 의도가 겹치면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사실 세상에 어떤 형들이 동생을 팔아버릴까? 마음을 품겠습니까만은 사실 형들의 의도는 더 심한 것이었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아예 죽이려고 마음을 먹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히 ‘르우벤’이라는 형이 죽이지만은 말자고 제안을 했기에 다행히 목숨만은 건졌습니다만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사랑받고 귀여움 받는 아들에서 머나먼 타국, 이집트로 끌려가서 노비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요셉의 일생
그 후 요셉의 일생은 어떻게 되었나요? 여러분의 인생에 벌어진 일이라면 어떻게 하셨을 것 같습니까? 자포자기? 아니면 불굴의 의지로 도주? 어떤 일생이 요셉의 앞에 펼쳐졌을까요?
아시다시피 그 이후에도 요셉의 일생은 높은 파도를 넘는 것과 같은 일생이었습니다. 다행히 요셉 특유의 성실함과 인내로 좋은 평판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높은 직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 순간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주인인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한 결과였습니다. 요셉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기가 그지없습니다. 그의 인생에 불어닥친 또 한번의 파도 앞에 쓰러져 버린 것 같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 우연히도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죄수에게 이런 기회가 온다는 것은 거의 희박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일들을 가리켜서 ‘재수가 좋다, 운이 좋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벌어진 일,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보는 다른 시선이 하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표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게 어렵고 힘든 일이 내 인생에 왔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습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나를 향한 따뜻한 손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신앙입니다. 신앙이 없으면 발견하지 못합니다. 알지 못합니다. 내게 주어진 벌어진 일들을 내 감정에 따라 처리해 버리지 않고, 그 속에 숨어져 있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려고 애쓰는 일입니다. 저는 요셉의 마음에 품고 있었던 단단한 심지 같은 신앙이 그를 붙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죄수에서 총리로
이야기를 꾸며도 이렇게 극적으로 꾸밀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이 요셉의 인생에 벌어졌습니다. 죄수의 신세, 즉 언제 처형 당할지도 모르는 신세가 당시 죄수 신분일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해 주는 일을 통해서 아예 그의 경제 장관이 됩니다. 나라에 앞으로 7년 동안 흉년이 들것인데, 그 사태에 대비하는 역할이 요셉에게 주어졌습니다. 이제는 거들먹거리며 살만 할텐데 요셉의 일생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십시오.
-흉년의 여파
흉년은 요셉이 살던 이집트 땅에만 불어 닥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 야곱이 살던 땅에 까지 흉년의 여파가 불어 닥쳤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늙은 아버지를 부양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식량이 비축되어 있다는 이집트로 식량을 구하러 떠나게 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세월이 너무나 많이 지났기에 겉모습 뿐만 아니라 많은 것이 변했을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단박에 형들의 모습을 알아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3절부터 읽었습니다. 그런데 2절에 보니까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요셉이) 한참 동안 울었다.” 왜 울었는지 아시겠지요? 요셉의 형들은 그들 앞에 앉아 있는 이집트 제국의 총리대신이 누군지 알 길이 없습니다. 자신들은 그저 먼 타국에서 식량을 구걸하러 온 형제들이거나 아니면 스파이 첩자들로 오해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최대한 겸손한 자세로 요청해서 많은 식량을 얻어 가야하고, 또 스파이 첩자로 오해 받지 않도록 해야 하는 신세입니다.
3절에서 요셉은 눈물을 닦고 나와 앉아서 담대하게 형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요셉입니다.” 형들은 입이 얼어붙고 말았다고 이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벌어진 일
여러분, 누구나 인생을 평탄하게 살고 싶어 할 것 같습니다. 높은 파도는 맞고 싶지 않고, 그저 평탄하고 안정되게 살고 싶을 것입니다. 맞지요? 특히나 젊은이들의 생각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내 의도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기도 합니다. 사실 무척이나 말하기 어려운 일이고, 힘든 일입니다만 내가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사람의 인생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 속 요셉의 일생도 마찬가지이고, 수 천년 후대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 일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다 알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의 인생에 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형들의 아주 작은 질투 섞인 감정이 잘 해소되지 못하고 축적된 것이 아마 원인이자 이 일의 시초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오늘 말씀 본문을 읽고 묵상하다보니 별의 별 생각이 다 듭니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게 된 사건의 시초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셉과 그 형들의 아버지인 야곱이라는 인물, 기억하실 것입니다. 야곱은 일생을 형 ‘에서’와의 갈등과 경쟁 관계 속에서 살았던 인물처럼 보입니다. 그 아버지 이삭은 ‘형 에서’를,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편애했습니다. 이 편애의 결과가 요셉의 형들과 요셉 사이의 편애를 낳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요셉에게만 색동옷을 지어 입히는 야곱의 행동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은 벌어졌고, 사태는 눈덩이처럼 커져갔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벌어지는 일과 비슷합니다. 요셉은 노예로 끌려가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다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자신이 요셉이라고 밝힌 후에 요셉은 자신의 일생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5절입니다.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아 넘기긴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 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5절)
그리고 이렇게 해석을 덧붙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형님들보다 앞서서 보내신 것은, 하나님이 크나큰 구원을 베푸셔서 형님들의 목숨을 지켜 주시려는 것이고, 또 형님들의 자손을 이 세상에 살아 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7절)
그리고 요셉의 자신의 일생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의미하는 말을 요셉이 이렇게 합니다. 잘 들으십시오.
“그러므로 실제로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일생을 놓고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막연하고, 알 수 없고, 분명하지 않아서 어렵고 힘들게 여겨지시지는 않습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일생에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우리는 모두 예측할 수 없습니다. 알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이고, 인간의 한계성입니다. 그렇기에 불안에 떠는 것이 인생입니다. 하지만 신앙을 지닌 사람은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 속에 무엇이 담겼는지 신앙의 눈으로 봅니다. 우리의 일생에, 여러분 각자의 생애라는 시간에 무엇이 새겨질지 모릅니다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의 손길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우리가 살아왔습니다. 어떤 인생을 꾸며 나가시겠습니까?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리기로 작정한 순간 그들 입으로 뱉었던 말이 있습니다. 한번 들어보십시오.
“그들은 서로 마주 보면서 말하였다. « 야, 저기 꿈꾸는 녀석이 온다.
자,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들짐승이 잡아먹었다고 하자. 그리고 그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창세기 37:19-20)
하나님이 요셉의 인생을 어떻게 하시는지 한번 보자!는 교만한 말들을 내놓았지만 오늘 우리는 봅니다. 하나님이 그의 인생을 어떻게 가꾸셨는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벅차고 힘들다고 여겨질 때, 막연한 두려움과 절망이 우리를 감쌀 때 오늘 말씀을 기억하셨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요셉 형들의 잔혹한 이 말을 듣고 계셨음을 우리가 마음 깊이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지 우리의 일생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겸손한 마음으로 두고 보는, 시선을 하나님께 두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