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너 사람아!
본문 : 미가 6:1-8, 고린도전서 1:18-31, 시편 15편, 마태복음 5:1-12
【미가 6:1-8】
(1-2절)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 너는 일어나서 산 앞에서 소송 내용을 샅샅이 밝혀라. 산과 언덕이 네 말을 듣게 하여라. 너희 산들아, 땅을 받치고 있는 견고한 기둥들아, 나 주가 상세히 밝히는 고발을 들어 보아라. 나 주의 고소에 귀를 기울여라. 나 주가 내 백성을 상대하여서, 고소를 제기하였다. 내가 내 백성을 고발하고자 한다.
(3-5절) 내 백성은 들어라!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짐이라도 되었다는 말이냐? 어디, 나에게 대답해 보아라.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왔다. 나는 너희의 몸값을 치르고서, 너희를 종살이하던 집에서 데리고 나왔다.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보내서, 너희를 거기에서 데리고 나오게 한 것도 바로 나다. 내 백성아, 모압의 발락 왕이 어떤 음모를 꾸몄으며, 브올의 아들 발람이 발락에게 어떻게 대답하였는지를 기억해 보아라. 싯딤에서부터 길갈에 이르기까지, 행군하면서 겪은 일들을 생각해 보아라. 너희가 이 모든 일을 돌이켜보면, 나 주가 너희를 구원하려고 한 일들을, 너희가 깨닫게 될 것이다. »
(6-7절) 내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높으신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합니까? 번제물로 바칠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가면 됩니까? 수천 마리의 양이나, 수만의 강 줄기를 채울 올리브 기름을 드리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내 허물을 벗겨 주시기를 빌면서, 내 맏아들이라도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를 빌면서, 이 몸의 열매를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8절)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인사 나눕시다.
파리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모두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위 분들에게도 평화의 인사를 건네주시기 바랍니다. 한 주간 주님과 동행하는 귀한 시간되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 예배의 시간을 구별하여 주님 앞에 나왔으니 우리가 세상 일, 세상 근심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말씀으로 우리에게 일러주실 때 주님 말씀을 차분하게 내 안에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시대의 사람, 낯선 미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미가’라는 이름의 한 사람을 만납니다. 좀 낯선 분입니다. 미가를 오늘 처음 만나는 분도 계시겠지요? 2700년 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사람이지만 어쩌면 우리에게 낯선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미가라는 이름의 예언자를 사실 잘 모릅니다. 성경말씀 가운데서도 워낙 구석에 있고, 다른 예언자들과 특별히 구별해서 읽기도 쉽지가 않기에 그렇습니다.
미가라는 이름은 ‘누가 주님과 같으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가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고 있는가”를 묻는 이름을 가진 사람입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사람이란 ‘시대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시대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입니다. 시대의 문화와 문명은 사람이 만들지만 역으로 시대의 영향을 받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어떤 책에서 본 내용입니다만 한반도에 사람이 산지가 5000년이 넘었는데 그 오랜 역사 가운데 가장 평화로운 시대이고 가장 물질적으로 풍성한 시대가 지금 이 시대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여기 앉아 계신 모든 분이 한반도에서 태어나고 죽었던 수억의 사람들 가운데 이런 행운을 지닌 분들입니다. 우리는 전쟁의 참화를 경험해 보지도 않았고, 배가 고파서 죽어가는 사람을 본 적도 없습니다. 적어도 누릴 것 나름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난 것이 무척이나 행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겠지요.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어느 특정한 시대 속에 살았고 오늘 말씀 속 ‘미가’도 역시 그렇습니다. 오늘 미가라는 이름을 대하지만 실제로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릅니다. 키는 큰지, 목소리는 어떤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미가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그저 그가 남긴 말을 통해서입니다. 그가 남긴 말씀으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미가에 대한 정보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미가 1:1에 보면 유다 왕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라고 되어 있으니 기원전 750-697년 정도가 그가 살았던 시대인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미가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사야’처럼 예루살렘 출신도 아닙니다. 교육을 잘 받은 신분이 높은 사람도 아닙니다. ‘모레셋’(성경에 단 한번 등장)이라는 이름도 없는 동네 출신의 누구인지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바로 ‘미가’입니다. 이것이 미가라는 사람에 대한 소개입니다.
-미가의 시대
미가가 활동하던 시기는 앗시리아 제국이 세력을 확장하여 근동 세계를 복속시키기 위해 전쟁을 벌이던 혼란기였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은 늘 세계사 책에 등장하는 거대한 제국들의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앗시리아, 바빌론, 이집트, 페르시아 말만 들어도 어마어마한 이 제국들이 자기네 땅에서 전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땅에서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뭔가 억울하겠지요?
하지만 지리적으로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구약 성서의 지리적 세계, 곧 성경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땅을 가리켜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라 부릅니다. 남쪽 이집트에서 이스라엘과 레바논을 거쳐 유프라테스, 티그리스강을 선으로 이으면 초승달 모양이 됩니다. 이 지역은 비교적 물이 풍부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입니다. 사람들은 물이 풍부한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습니다. 하필이면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한 가운데가 이스라엘 땅입니다. 이스라엘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권과 이집트 문명권, 이후에는 그리스 로마 문명권이 충돌하는 지점에 있었습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처럼 이스라엘은 제국들이 자웅을 가리는 무대가 될 때가 많았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 연달아 상상이 되는 지역이 있습니다. 한반도지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한 가운데 놓여 충돌의 장이 되는 곳입니다.
유다는 앗시리아의 압박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언자들은 사람들이 까맣게 잊고 사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상기시키는 사람들입니다. 예언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출애굽 정신입니다. 왜 출애굽인가 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탈출했던 고대 이집트는 하층민들을 비인간으로 대하거나 수단으로 사용하는 일이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세계를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체제 밑에서 시달리는 이들의 고통의 신음소리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에 이스라엘은 그 마음을 잃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면서도 부끄러운 줄도 몰랐습니다. 권력자들은 빈자에게서 탐나는 밭을 빼앗고, 집 임자를 속여서 집을 빼앗았습니다. 미가는 그런 현실을 보며 격분했습니다. 권력을 사욕을 채우기 위해 사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역사는 퇴행을 거듭합니다. 권력이 사사로이 집행될 때 세상은 무정한 곳으로 변합니다. 자신의 탐욕스러움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네 단락으로 나누어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1-2절 : 하나님의 고소, 고발
1절에 “주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바를 미가가 전달하는 형식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후에 말씀을 읽어 보면, 주제는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고소하고, 고발합니다. 여러분의 부모한테 고소당해 본 적이 있나요? 아니면 혹시나 다른 고소, 고발이라는 법적인 절차를 밟아본 적이 있습니까? 아마도 없으실 겁니다. 그래서 이 엄중하고 심각한 상황에 대해 깊이 이해하지 못합니다만 어느 날 내 집에 나를 법정에 고소 고발하는 고발장이 와있다면 어떨까요? 그 때부터 가슴이 벌렁벌렁해지겠지요? 프랑스 생활 초기에 서류가 잘못되어서 CAF에서 얼마를 더 받았으니 내놓으라는 내용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부터 머리가 하얘지고 심장이 빠르게 뜁니다. 뭔가 내가 이해 못한 일이 벌어졌구나 생각들이 머리를 막 스쳐갑니다.
말씀을 보면 뭔가 심각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고소하시겠다니요? 백성들이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습니다.
-3-5절 : 하나님을 짐처럼 여긴 백성
3-5절의 말씀을 읽어보니 어떠신가요? 고발의 이유를 찾으셨나요? 저는 이렇게 요약하고 싶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하나님이 고소, 고발한 이유는 이것입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짐처럼 여겼다”는 이유입니다. 한 때는 하나님이 필요해서 하나님의 도움을 얻고 살았지만, 어느 순간 내 곁에 계시는 하나님이 부담스럽습니다. 옆에 계시지 않고, 좀 멀리 떨어져 계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옆에 계시면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불편한 사람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처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필요 없어진 시대, 그런 세상살이는 어떨까요? 무엇이 하고 싶을까요? 오늘 우리에게도 심각하게 들리는 질문입니다. 우리 시대는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 말고 의지할 것이 참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말고 절대적으로 내게 안정감을 주는 존재가, 그 무엇이 있습니다. 내가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 말입니다.
이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시려는 일은 이것입니다. 5절 “나 주가 너희를 구원하려고 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을 구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닙니다. 구원은 구원인데 하나님이 필요 없는 구원을 생각합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자신을 구원할까요? 하나님 말고 자신을 구원할 대용물이 있어야 하지 않나요? 구체적인 실례를 보기 위해 말씀 한 구절 찾겠습니다.
미가 3:11입니다. “이 도성의 지도자들은 뇌물을 받고서야 다스리며, 제사장들은 삯을 받고서야 율법을 가르치며, 예언자들은 돈을 받고서야 계시를 밝힌다. 그러면서도, 이런 자들은 하나같이 주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계신다고 큰소리를 친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우리에게 재앙이 닥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말씀을 보니 자신들은 안전하다고 여기네요. 자신들은 구원받았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정의가 전혀 발휘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거기에 참여하고, 그런 세상에 일조하는 일상을 살면서 뒤로는 자신들이 마련한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뇌물, 성직매매, 하나님의 일을 돈으로 환치시키는 일, 이렇게 사는 자신들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잘못된 확신이 가득합니다. 이것이 읽혀지시나요?
한 말씀 더 소개합니다. 미가 3:1-3절입니다.
“정의에 관심을 가져야 할 너희가, 선한 것을 미워하고, 악한 것을 사랑한다. 너희는 내 백성을 산 채로 그 가죽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뜯어낸다. 너희는 내 백성을 잡아먹는다. 가죽을 벗기고, 뼈를 산산조각 바수고, 고기를 삶듯이, 내 백성을 가마솥에 넣고 삶는다.”
잔혹할 정도의 묘사입니다. 미가 선지자가 전하는 백성들의 상황이 이렇다는 말입니다. 정치 지도자들, 종교 지도자들, 권력에 기생해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잡아먹는 이들이라는 말씀입니다.
-6-7절 : 어리석은 응답
이제 사람들이 대답할 차례입니다. 6-7절은 이런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백성들이 하나님께 대답하는 바를 미가 선지자가 대언하여 말합니다. 하나님의 화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좋은 송아지 번제물을 바쳐야 하느냐?, 수천 마리 양, 좋은 올리브 기름, 정 안되면 아들이라도 바쳐야 하느냐고 하나님께 되묻습니다. 이런 제물을 받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도 알아드리지 못하는 대답입니다. 돈, 물질로 보상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나님을 대하는 방식이 여기에 머물고 맙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장로 얼마, 권사 얼마, 집사 얼마라는 말이 한국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바는 우리의 중심,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중심만은 빼고 다른 것을 드리겠다고 합니다. 미가 선지자 시대 백성들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지요? 이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때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8절 : 너 사람아!
하나님이 ‘백성들아!’ 이렇게 통째로 부르시지 않고, 한 사람을 지칭하듯이 부릅니다. “너 사람아!” 우리 각자에게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하듯이 말씀하십니다. “너 사람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할 일을 우리가 모르는 바가 아니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해주셨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 이미 들은 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사는 법을 잘 압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손으로 구원을 얻는 법을 잘 압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궁금합니까? 방법이 우리 눈앞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 가운데서 말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 시대의 윤리가 아닙니다. ‘구약의 출애굽 정신’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은 변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 이 사랑을 신뢰할 때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경고처럼 우리에게 들립니다. 경고 듣기가 참으로 불편하지요?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일 때 주님의 은총이 유입되는 통로가 됩니다.
오늘날의 시대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공동번역으로 8절의 말씀을 읽는 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이 사람아, 야훼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서 알지 않느냐? 정의를 실천하는 일,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는 일, 조심스레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 그 일밖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 그의 이름을 어려워하는 자에게 앞길이 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