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5일 주현 후 제 5 주 (2023년-06호)

제목 : 너 교회여!
본문 : 이사야 58:1-9a, 고린도전서 2:1-12, 시편 112:1-9, 마태복음 5:13-20

【고린도전서 2:1-12】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로 가서 하나님의 비밀을 전할 때에, 훌륭한 말이나 지혜로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 밖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나는 약하였으며, 두려워하였으며, 무척 떨었습니다. 나의 말과 나의 설교는 지혜에서 나온 그럴 듯한 말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나타낸 증거로 한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바탕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숙한 사람들 가운데서는 지혜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지혜는, 이 세상의 지혜나 멸망하여 버릴 자들인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가 아닙니다. 우리는 비밀로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시려고, 영세 전에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이 세상 통치자들 가운데는, 이 지혜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이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한 바 «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한 것들,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 않은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련해 주셨다 » 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을 살피시니, 곧 하나님의 깊은 경륜까지도 살피십니다.

사람 속에 있는 그 사람의 영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오신 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들을 우리로 하여금 깨달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인사합시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파리중앙의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2월의 첫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새해를 맞이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을 보내고 새로운 달을 맞이하였습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은총을 맘껏 누리는 2월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서로에게 인사를 전하고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서로에게 인사 전해 주십시오. 반가운 마음,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십시오. 무엇보다도 세상이 줄 수 없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전하십시오.

-여행

여러분,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 조금은 엉뚱한 질문하나 드려보고 싶습니다. 질문은 이것입니다. 여러분, 여행 좋아하십니까? 사람들 대부분은 여행을 좋아한다고 대답합니다. 물론 여행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여행은 말만 들어도 설렘을 주지요. 들뜨고 설레는 일입니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새로움이 참 불편하지만 새롭게 받아들여집니다. 이렇게 여행을 통해 낯설고 새로운 자극이 주어지면 평소 생각지도 못했던 시선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행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입니다. 낯선 사람들, 날씨, 돌발 상황, 언어소통의 어려움, 음식문제, 잠자리의 불편함 등이 가득한 것이 여행입니다. 저도 유럽을 몇 달 동안이나 여행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매일 텐트를 칠 안전한 곳을 찾아야 합니다. 얼마나 불편한 일입니까? 그러나 이런 여러 가지 어려움과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떠납니다. 하다못해 어디 관광지라도 가게 되면 마다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 고등학생 시절 수학여행을 떠올려 보십시오. 가서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할지, 부모님으로부터 특별 용돈은 얼마를 받아서 갈 수 있을지, 친구들과 화사한 웃음이 만발했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으실 겁니다.

오늘날 우리는 여행하면 관광을 떠올리게 됩니다만, 오늘 말씀 속에는 오랜 여행 끝에 만들어진 어떤 결과물을 자신의 앞에 놓고 고민에 빠진 사람이 있습니다. 이해되십니까? 이 사람은 오랜 기간, 여러 곳을 여행했습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세 차례에 걸쳐서 여행을 했습니다. 이 사람의 여행 경로를 보면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을 모두 이용해서 한다고 해도 무척이나 험난한 여정입니다. 2000년 전에 말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여행을 통해서 어떤 일을 했고, 그 일의 결과물들이 자신 앞에 놓였습니다. 그런데 이 결과물들로 인해 자신이 다녀온 그곳에 편지를 써서 보내야 했습니다. 그것이 고린도전서입니다.

-여행의 결과물

이 여행자, 이 사람은 바울이라고 알려진 사람입니다. 바울은 3번에 걸쳐서 오늘날 투르키예 중부와 그리스 지역을 수 년 동안 여행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여행은 개인적인 호기심이나 관광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복음의 전파, 선교”라는 하나의 목적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모든 여행은 그 여행으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 여행의 결과가 항상 그의 인생에 남겨집니다. 그곳에서 사귄 친구들이 남을 수도 있구요, 인생의 좋은 경험, 잊지 못할 추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세 번의 여행을 통해서 무엇을 얻었을까요? 그에게 돌아온 결과물이 무엇이었을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교회 설립입니다. 바울이 지나간 곳마다, 바울이 머문 곳마다 대부분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은 아름다운 교회 건물이 세워진 것이 아닌 것을 아시지요? 건물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교회 공동체가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워졌다”는 말을 다시 보십시오. 이 말 속에 이런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인도하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교회의 이름으로 이렇게 모여앉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보내 주신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인도하심을 깨닫습니까? 이것을 위해 우리는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고린도 교우들이 찾아오다.

앞서서 바울은 세 번이나 큰 여행을 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말씀은 세 번째 여행 중의 일입니다. ‘에베소’라고 하는 곳에서 27개월 동안이나 오랜 시간 머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교인이던 글로에(고전 1:11, 프랑스식으로는 끌로에) 집안사람들이 와서 고린도 교회에서 자신을 찾아왔습니다.
바울은 이들이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바울이 직접 세운 교회가 고린도교회인데, 그 곳에서 함께 신앙 생활하던 몇몇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자신을 만나러 왔습니다. 좋은 만남이겠지요? 그러나 바울을 만나러 온 다른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바울에게 가지고 온 좋지 않은 소식들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너무나 많은 문제가 발생했는데, 바울 사도께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답을 좀 해주십사 부탁하려고 바울을 만나러 왔습니다.

바울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마음이 아팠겠지요.
고린도 교회에 도대체 어떤 문제들이 발생했을까요? 교회 안에 당파, 분파가 생겼다고 합니다. 교인들이 갈라져서 싸우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바닷가 항구에 위치하고 있어서 뱃일을 하는 어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집창촌이 있었던 듯합니다. 그곳에 들락거리는 교인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에게 훈계가 필요했습니다. 다음 문제는 성도들 간에 법적인 소송 문제가 많았습니다. 서로 세상 법정에다가 고소하는 일입니다.
이런 문제만이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많은 신앙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어도 되는지, 그들이 받은 여러 은사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정말 끝도 없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왔습니다.

-갈라지고 싸우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의 단락은 그 중 하나에 대한 대답입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분파가 생겨서 서로 다투는 일이 생겨버렸습니다. 교회 안에 성도들이 갈라져서 다투는 모양이야말로 정말로 보기 흉한 모습입니다. 안타깝게도 저도 참 많이 봤습니다. 가슴이 찢어지지요. 좋지 않은 기억들입니다.
고린도 교회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이 사람들은 어떤 모양으로 갈라져서 싸웠던 것일까?

-바울파 :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세운 사람입니다. 고린도에 머무는 동안 스스로 노동해서 생계비를 벌었습니다. 이런 일로 인해 고린도 교인들에게 존경과 대우를 받았습니다. 당연히 바울파라고 말하는 이들이 생겼습니다.

-아볼로파 : 아볼로는 누구일까요? 사도행전 18장에 보면, 아볼로가 등장하는데, 아주 성경에 능통하고 수사학(웅변술)에 능통했으며 달변가로 유명했던 사람입니다. 요즘 말로 바꿔 말하면 아주 아주 유명한 설교가입니다. 요즘 우리 시대의 모습으로 보자면, 유튜브에 등장하는 유명한 설교가 분들입니다.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고린도 교회 교인 중에는 아볼로를 추앙하는 사람들이 한 층을 이루었습니다.

-게바파 : 게바는 누구인가요?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의 우두머리 같은 존재입니다. 종가집입니다. 예수님과 가장 가까웠고, 가장 적통한 사람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게바’를 따르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파 : 고린도 교회 안에는 이렇게 사람인 제자들을 따르는 무리들 말고, 오로지 초월적인 그리스도만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조금 어렵습니다만 고린도 교회 안에는 오직 영적인 것만 추종하는 ‘영 열광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분들은 오늘날도 여전히 많이 존재합니다. 세상살이에는 관심 없고 영적이고 신령한 그리스도를 추구합니다.

-바울, 고린도교회에 대답하다.

바울은 이런 문제가 많은 고린도교회에게 지금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이런 게 참으로 어렵습니다.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무조건 질책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책망을 듣는 걸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야단맞는다고 해서 잘못을 고치지도 않습니다. 물론 준비가 된 사람이라고 한다면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삼겠지만 대개는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바울은 서로 분열되어 있고, 열광주의에 빠져 있는 고린도교회 교우들에게 신앙의 토대가 무엇인지를 우선 설명하는 것으로 편지를 시작합니다. 우상숭배를 하거나 않거나,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거나 상관없이, 도덕적인지 아닌지 불문하고, 열광적이던 이성적이든 상관없이 모든 기독교 신자들이 영혼의 디딤돌로 삼아야 할 신앙의 토대를 말합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장 2절입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 밖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만 생각하겠다는 바울의 말은 당시 고린도 교회의 어떤 신앙 행태에 빠져들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교회를 세운 사람을 따라 가는 것도 아니고, 유명한 설교가가 교회를 이끄는 것도 아니고, 예수님 제자 중 유명하다고 해서도 안됩니다. 그리고 세상은 더럽고 악하고 타락했으니 영적인 것만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 복잡한 세상 문제에 거리를 두고 순전한 사람이 되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고린도 교회는 따라가서는 안된다는 것이 바울의 주장입니다.

-하나님의 지혜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자면 이렇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포함하여 온 세상의 교회는, 그리고 교회를 이룬 이들, 우리 모두를 포함해서입니다. 교회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중심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중심, 그 신앙의 내용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어쩌면 뭐 이렇게 당연한 것을 말하는가 싶을 수도 있습니다. 신앙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받기에 적절하고 마땅해서 아들을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당연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가장 인정할만한 가장 당연한 방법인 군사력이나 권력의 힘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힘의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처참하게 돌아가신 하나님의 방법이 하나님의 지혜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친절하셔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에게 이런 하나님의 지혜와 경륜을 깨닫도록 가르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바울도 얼마나 마음이 급했던지 중심을 잃은 듯한 고린도 교우들에게 편지의 서두 1장에서만 인사하면서 10번 가깝게 예수 그리스도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1장 9절 말씀이 그 모든 것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가지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능력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를 묶어야 하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작은 공동체인 파리중앙교회 우리 만해도 서로 생각이 다릅니다. 가치관도 다르고, 교육관도 다르고, 세계관도 다르고, 심지어 정치관도 다릅니다. 취미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릅니다. 이런 걸로는 교회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잘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는 취미 동아리도 아니고 정치결사체도 아닙니다. 교양 수준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친목을 도모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가 되는 공동체이어야겠지요. 그게 가능해야만 참된 하나님의 교회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나요? 신앙의 가장 본질적이고 기초적인 사실에 집중할 때만 그게 가능합니다. 본질적이고 기초적인 사실은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많은 교회들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변곡점의 정점에 다다랐습니다. 교회가 변하지 않고서는 살아날 수가 없다는 말들이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전해집니다. 교회가 위기에 놓였다고 말합니다.
이제 오늘 우리는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요? 우리가 향하는 방향을 확인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를 교회이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놓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주님이시라면, 주님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우리의 삶, 우리의 교회가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이제 교회의 주춧돌을 다시 새기며 새롭게 시작하는 우리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예수가 우리 주인이 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