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5일 사순절 제 2 주 (2023년-10호)

제목 : 믿음으로 나아간 사람들
본문 : 창세기 12:1-4a, 로마서 4:1-5, 13-17, 시편 121편, 요한복음 3:1-17

【창세기 12:1-4a】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 아브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길을 떠났다.

【요한복음 3:1-3】
바리새파 사람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대 사람의 한 지도자였다. 이 사람이 밤에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 랍비님,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선생님께서 행하시는 그런 표징들을, 아무도 행할 수 없습니다. »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

-인사

사순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서로 인사하겠습니다. 서로에게 인사해주십시오.
지금 이 시간은 지난 한 주간 우리의 삶을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 시간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는 일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많은 좋은 방법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경청하고 그 말씀의 뜻을 이뤄드리는 일이 가장 좋은 일입니다.

-아브람의 등장

오늘 우리는 창세기의 말씀 속에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람’이라는 인물을 만납니다. 오늘 창세기의 말씀 12장에서 처음으로 아브람이라는 인물이 성경의 중심인물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이 아브람의 인생 이야기가 창세기 12에서 시작해서 25장까지 나오거든요? 창세기 전체가 50장인데 열 네 장이나 차지하는 것을 보면 무척이나 중요한 인물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분량을 많이 차지한다고 성경의 중요한 인물은 아닐 것입니다. 아브람이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브람이 위대한 신앙의 조상이 되는 이유는 하나님이 부르실 때, 하나님이 필요하셔서 부르실 때, 하나님의 부르심에 ‘예’라고 삶으로 대답한 사람이기에 중요한 인물입니다.

우리는 아브람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만 11장 마지막에 아브람의 아버지인 ‘데라’라는 인물과 함께 아브람의 족보가 나옵니다. 아브람이 어떤 집안의 사람인지 소개하기 위해, 사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돕기 위해 족보로 미리 아브람이란 사람의 등장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제가 11장의 말씀 한 구절을 소개할께요. 들어 보십시오.

“데라(아브람의 아버지)는, 아들 아브람과, 하란에게서 난 손자 롯과, 아들 아브람의 아내인 며느리 사래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오려고 바빌로니아의 우르를 떠나서, 하란에 이르렀다. 그는 거기에다가 자리를 잡고 살았다.”(11:31)

이 한 구절로 아브람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내의 이름은 무엇인지, 같이 살게 된 조카 롯과 거주하게 된 도시 이름까지 다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정보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들 대가족이 살아가게 될 도시 ‘하란’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상업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장사하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이들에게 공통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의 신앙입니다. 그들이 섬기는 신은 ‘달신(월신) Nanna’ 숭배가 주된 신앙이었습니다. 고대 사람들에게 달이 차고 기우는 모습은 신비한 현상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달이 차올라 보름달이 되고, 또 시간이 흐르면 달이 완전히 그믐달이 되기도 합니다. 신비한 현상은 이렇게 숭배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여호수아 24장에 보면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 그도 달신 숭배를 하는 사람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짐작하건데 사회·경제적 요인도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아브람의 아버지는 세월이 흘러서 죽고 아브람은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무리를 이끄는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이 아브람의 인생도 어쩌면 예측할 수 있는 그런 모양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벌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집안, 친척들도 건재하고, 비록 자식은 없지만 조카 롯을 돌보며 한 가정, 한 부족을 이루고 평탄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조상들처럼 죽을 것입니다. 이것이 예상되는 그의 인생의 행로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다

그런데, 이런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갑자기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12:1)

이 말을 들은 아브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여러분이 한 번 아브람에게 감정이입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요즘 시대는 공감의 시대입니다. 타인의 감정을 읽고 받아들이는 일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 아브람의 심정이 되어 감정이입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떠나라”하시면 떠나실 수 있겠어요? 여기서 ‘떠나라’는 히브리말로 ‘레크 르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하나님의 부탁이나 권유가 아닙니다. “떠나줄래? 떠나는 게 어떻겠니?”가 아니라 “떠나라”는 ‘명령’입니다.
이미 자리 잡은 터전을 내어놓고 불안전한 낯선 삶의 현장으로 새롭게 갈 수 있겠습니까? 쉽지가 않지요. 어려운 일입니다. 이 ‘레크 르카’라는 단어 속에는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떠나라’는 말은 그냥 떠나라는 말이 아니라 “너를 위해서”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바는 너를 위해서 떠나라고 하시는데, 우리가 생각할 때는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겠습니다. 이제껏 그나마 삶의 터전을 마련하느라 애쓰고 고생해서 이렇게 자리 잡았는데, 하나님, “떠나라”하시다니요? 그리고 떠나는 것이 “나를 위해서” 라니요? 이것이 우리의 솔직한 심정일 것입니다.

-아브람 떠나다

오늘 말씀을 보면 12장 3절까지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부분이고, 4절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아브람이 떠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깊이 들여다보자면 3절과 4절 사이에 큰 공백이 담겨 있다는 것이 느껴지실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아무런 댓구도 없이 그저 떠났다고 되어 있지만 3절과 4절 사이에는 아브람이 받은 충격과 아브람이 하게 된 고민이 크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브람’이라는 사람에게 믿음의 조상이라는 큼직하고 명예로운 이름표를 붙여 주었지만 아브람도 사실은 한 사람입니다. 그에게 왜 고민과 결단의 고통과 어려움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기로 했습니다.

-믿음으로 떠나다

오늘 성서일과 로마서 4장의 말씀에서 바울은 아브람의 이 모습을 해설합니다. 뭐라고 말하는 가하면, 아브람의 이 행동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브람의 이 믿음으로, 이 믿음의 모습 때문에 하나님은 아브람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불러주셨다고 바울은 설명합니다.
여러분, 이해가 갑니까? 이 말은 이해하지만 사실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말이 어렵나요? 말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믿음이란 말에 대한 오해 때문에 더욱 믿음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상황이나 이성적인 판단 배제하고 주변 신경 쓰지 않고 막무가내로 목적을 향해 달려 나가는 것인가요? 이것을 믿음이라고 해도 좋을까요?

자, 여러분 믿음이 무엇인가요? 어떤 일이 벌어질 때 ‘믿음이 좋다’고 하나요? 어떤 사람이 믿음이 좋은지 안 좋은지 어떻게 구별하나요? 식별이 가능하세요?
저는 언젠가 한번쯤은 우리가 반드시 점검해보아야 할 신앙의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믿음’입니다. 믿음이라는 문제입니다.

-믿음 이해하기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믿음을 설명할 수 있을까?’ 말씀을 앞에 놓고 고민하고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 제 맘속에 불이 환하게 하나 켜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믿음은 맘속에 켠 촛불하나 같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제 맘속에 찾아든 생각입니다. 여러분에게 해당 사항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도 반드시 찾아야 하는 신앙의 답입니다.

하지만 제게 믿음이란 이런 것입니다. 내 마음에 촛불하나 밝히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갈 때는 촛불을 켠 사람과 촛불이 아예 없는 사람과 차이가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대낮에 빛이 얼마나 많은데 촛불하나의 밝기가 얼마나 드러나기는 할까요? 표시가 나기는 할까요? 잘 안 납니다.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좋은 믿음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불현 듯 내 삶에 어떤 사건이 찾아옵니다. 나의 내부로부터 사건도 있고, 외부로부터 온 사건도 있습니다. 외부적인 사건은 삶에 찾아든 어려움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사람들 사이의 관계의 어려움 등이 찾아옵니다. 해결하기가 굉장히 어렵고 고통스럽습니다. 눈앞이 어둡고 캄캄해집니다. 이 때 믿음 있는 사람은 행동은 뭔가 조금 다릅니다. 넘어지고 쓰러져 있다가도, 좌절하고 낙망해 있다가도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조금씩 빛을 내고 있음을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이 빛에 의지하여 일어서고, 이 빛에 의지하여 용기를 얻는 사람입니다. 믿음 있는 사람입니다. 아무런 의지할 것 없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하나님이 심어주신 작은 불빛이 피어남을 보고 깨닫고, 그 빛에 의지하여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내부적으로도 그렇지요.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유대 사람들의 지도자입니다. 좋은 가문에, 좋은 스승 밑에서 하나님 말씀도 많이 배운 사람입니다. 이 사람 인생에 불현 듯 찾아온 위기를 보십시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문제가 이 사람 내부에서 발생했습니다. 그토록 좋은 환경에서 하나님 말씀을 배워왔건만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 앞에 봉착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잘 모르겠는 거지요. 깨닫지 못하고 있는 신앙의 상태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나지 않으면,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알 수 없다.”
인생은 생물학적인 탄생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생명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생이 전부가 아니라고 우리가 믿는 신앙은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경험이 없이는 죽은 삶이나 다름없다.”는 말입니다. 니고데모는 자신이 죽은 채로 살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많은 하나님 지식이 머리 속에 가득해도, 아무리 많은 율법을 입으로 암송해도 자신이 죽은 채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예수님께 찾아온 것이지요.

제가 어려서 들은 이야기 가운데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모습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소가 안대요. 자신의 죽음의 순간이 임박했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눈물을 흘리는 소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습니다. 반면에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돼지는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코앞에 놓인 음식을 찾느라 꿀꿀거린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와 다른가요? 좋은 집, 좋은 차, 많은 돈이 자신의 인생의 전부인 생을 살면서, 그것이 전부라고 가르치는 세상에 순종하면서요. 믿음은 이에 대한 거부입니다. 내 맘에 밝혀진 촛불하나가 어둠 속에 있는 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합니다.
아무 것도 보장된 것이 없는 길을 아브람은 떠났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으로요.

-롯도 역시 구원의 길로

하나 더 추가로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믿음을 지닌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추가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 말미에 보면, “롯도 그와 함께 길을 떠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보아 넘길 수 있는 말씀입니다만 아브람의 조카 롯을 보십시오. 뜬금없이, 느닷없이 등장합니다. 오늘 말씀 속 조카 롯은 자신의 의지로 아브람을 따라 나선 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무런 의사 표현도 없습니다. 어쩌면 삼촌이 떠나니까 그저 생각 없이 나선 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길을 떠나는 삼촌 곁에서 그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안에 지내게 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믿음 좋은 사람 곁에 있으면 이렇게 좋은 것입니다. 영향을 받고 돌봄을 받기 때문입니다. 꽃밭에 누워있으면 꽃향기가 몸에 배는 법입니다. 단순한 이치입니다. 교회란 그런 곳이지요. 여러분도 그런 교회를 가꾸시기 바랍니다.

-말씀 맺기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오늘 말씀으로, 아브람의 신앙의 태도를 보고서 또 니고데모의 모습을 통해서 믿음에 대한 이해가 조금 깊어지셨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었던 분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니게 되시기를, 또 믿음이 깊지 않으셨던 분은 더 깊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는 믿음이 있기에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꿈과 여러분의 꿈이 점점 가까워집니다.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갑니다.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면 내 생명이 하나님의 크신 선물임을 알게 됩니다. 믿음으로 사는 인생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일에 동참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공동체 우리 파리중앙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