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28일 성령강림주일 (2023년-22호)

제목 :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인생
본문 : 사도행전 2:1-4, 유다서 1:20-23

【사도행전 2:1-4】

오순절이 되어서, 그들은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다. 그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길이 솟아오를 때 혓바닥처럼 갈라지는 것 같은 혀들이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유다서 1:20-23】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가장 거룩한 여러분의 믿음을 터로 삼아서 자기를 건축하고, 성령으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면서 자기를 지키고, 영생으로 인도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십시오. 의심을 하는 사람들을 동정하십시오. 또어떤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을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해 주십시오. 또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을 두려운 마음으로 동정하되, 그 살에 닿아서 더럽혀진 속옷까지도 미워하십시오.

-인사합시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파리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모두 반갑습니다. 성령강림주일에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서로에게 인사를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귀한 인생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성령강림의 날

오늘은 교회의 생일입니다. 이 세상 모든 교회의 생일, 곧 성령강림주일입니다. 교회 건물을새로 지어서 봉헌한 날이 아닙니다. 교회의 진정한 생일이란 이 세상에 성령 하나님이 오시어 죽음의 기운으로 두려움이 가득한 제자들을 일으키시고 전혀 다른 사람들로 변화시켜 주신 날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입니다. 존재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생일입니다.
요즘 세상의 변화가 참 빠름을 느낍니다. 변화무쌍한 세상을 우리가 살아갑니다. 한 예로 지난 주 지하철에서 곁에 있던 중국 여성이 전화기에 대고 ‘니하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말이 텍스트가 되어서 누군가에게 문자로 보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기술이 있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 모습을 보니까 신기합니다. 상상 속의 일들이 현실로 바뀌는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의 모습을 보면 변화를 그다지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익숙한 것, 즐겨먹던 것 계속 먹게 되고, 옷 입는 것만 봐도 늘 그렇습니다. 익숙한 대로 살고, 익숙 해진대로 살아가는 게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성령께서 강림하시기 전에 제자들의 모습은 익숙한 대로 살아가던 사람의 모습입니다. 십자가예수 처형 사건은 늘 그랬듯이 사람들에게 패배감과 열패감을 일으켰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를 보고 고향으로 돌아가 버린 제자들을 기억하실 겁니다. 마음속에 품었던 하나님 나라의 열정은 모두 수그러들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인생에 남는 것은 삶의 무기력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모여 있었던 곳이 마가의 다락방입니다. 그런데 이 날, 이들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 곳에 모여 있던 많은 사람들이 성령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이 날은 교회의 시작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곳에 모여 앉아있는 것도 이와 같은 경험의 사람들이기에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에게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납니다. 오늘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품게 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여러분, 그러기 위해 오신 것 맞으시죠?

-시간이 순간을 만나다.

최근 어느 철학자의 글을 읽다가 재미난 대목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빅토르 위고’ 아시지요?
프랑스의 대문호 소설가 의 빅토르 위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837년 8월22일 빅토르 위고의 편지 내용입니다. 이 날은 특별한 날인데, 어떤 날인가 하면 빅토르 위고가 처음으로 기차를 타게 된 날입니다. 기차에 올라타서 창문을 통해서 바라본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길가의 꽃들은 더 이상 꽃이 아니라 얼룩, 아니 빨갛고 하얀 줄무늬다… 모든 것이 줄무늬가된다. 곡물 밭은 부스스하게 마구 자라난 노란색 털이며, 밭은 초록색 머리칼을 길게 땋은 것같다… 가끔씩 어떤 그림자, 형태, 허깨비가 나타났다가 번개처럼 창문 뒤로 사라진다.”이해 하셨습니까? 기차를 처음 타게 된 ‘빅토르 위고’가 기차의 속도감에 놀란 장면입니다. 그냥 보면 꽃인데 빠른 기차 안에서 보면 알록달록 줄무늬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이 지점입니다. 이 때 기차 속도가 얼마일까요? ‘빅토르 위고’를 속도감에 깜짝 놀라게 하고,세상의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 버린 이 순간, 기차의 속도가 시속 24km 였답니다.
우리 시대의 교통수단의 속도를 이미 경험한 우리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속도지만 빅토르 위고에게는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입니다. 처음 맛보는 속도감에 꽃도 꽃이 아닌 것처럼 보이고, 들판의 곡물 밭도 더 이상 곡물 밭이 아닙니다. 허깨비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속도는 상대적인 것입니다. 아인쉬타인에 따르면 속도는 시간도 변형시킨답니다. 이 말은 시간 역시도 상
대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시간은 그냥 의미 없이 흘러가지만은 않습니다. 의미 없이 지나가던 시간이 어느 날, 어느 순간을 만납니다. 이런 순간이라는 것은 사람의 일생을 바꾸어놓기도 하고, 인류의 운명을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회심의 순간

우리 사람들에게 정말 중요한 사건은 이렇게 찾아옵니다. 흐릿하게 지나가 버리는 일이나 사건도 있지만 점을 찍듯이 콕 찍어서 나에게 기억으로 남는 시간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이런 순간을 ‘회심의 순간’이라고 표현합니다. 말 그대로 내가 마음을돌이키게 된 어느 순간, 어떤 사건입니다.
‘성 어거스틴’이라는 분을 아시지요? 어거스틴이 밀라노의 정원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서 있습니다. 갑자기 울음이 터졌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은 과거의 사슬에매여 있는 자신을 깨닫고 목 놓아 울고 있었습니다. 그 때, 벽 너머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이들의 노래 가사가 “톨레 레게” 즉, “집어서 읽어라.”는 노래 가사였습니다. 이 소리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이 때 눈에 보이는 구절이 이것입니다.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로마서 13:12-14)
여러분에게 이런 순간이 있습니까? 이렇게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우리에게는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려는 마음을 먹게 된 순간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귀한 방점을 찍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을 처음 느낀 순간일수도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처음으로 깨달은 순간일수도 있습니다. 그 감격스러움이 어디에 지금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아직 그런 경험이 없으시다면 하나님께서 귀한 순간을 여러분에게 허락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 경험을 갖고 계시지만 모두 과거 속에 묻어 버린 분들이 계신다면 하나님과의 접촉의 그 순간을 다시 소중히 꺼내드는 여러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회심 이후

회심은 이렇게 우리 신앙에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회심 이후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자, 그 다음에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더욱 더 좋은 것을 달라고 할까요? 더 세고 더 강력한 체험을 달라고 할까요? 신기하고 놀라운 능력을 달라고 할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결국 우리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이전과 똑같이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의 경험이 우리를 일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그 구원은 아직 미완성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믿는 결단이 신앙생활의 출발이라면,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내주하시면서 우리를 다듬으시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세워 나가시는 것은 신앙생활의 과정입니다.

-유다서라는 이름

오늘 유다서의 말씀을 이런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들이 받은 그 은혜를 일상의 삶에서 어떻게 펼칠까? 어떻게 펼쳐야 할까? 입니다.
오늘 유다서 성경 이름은 ‘유다가 보낸 편지’입니다. 이 유다는 누구인가요? 여러분이 아는 유다는 누가 있나요?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인가요? 당연히 아닙니다. 그럼 누구일까요?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의 형제들이 네 명이나 있습니다.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입니다. 오늘 유다서의 저자는 바로 예수님의 형제인 유다입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형제인 야고보가 있었습니다. 야고보는 그러나 기원 후 62년에 네로 황제의 박해시대에 순교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야고보의 동생인 유다가 남아 있는 신자들을 돌보고자 써 보낸 편지가 바로유다서입니다. 유다서에 이런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셨지요?

-거룩한 믿음 위에 세우기

유다는 사랑하는 교우들에게 당부합니다. 20절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가장 거룩한 여러분의 믿음을 터로 삼아서 자기를 건축하고, 성령으로 기도하십시오.”
인생이라는 건축물의 기초를 ‘거룩한 믿음’으로 삼으라는 말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우리자신을 되돌아 볼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는 사람의 기초, 나의 토대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습니까? 말을 쉽게 바꾸어 보자면, 이렇습니다.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듯이 지금의 나를 쌓아올린 토대가 무엇인지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구성하는 것은 많고 다양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우리의 토대이자 주춧돌의 자리에 놓여 있습니까? 신앙은 우리를 추켜세워서 우리의 자존감을 높여 주기도 하지만 신앙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신앙입니다.

-자라고 거두기

여러분, 농사지을 때 사용하는 말 가운데 ‘김매기’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내가 재배하는 작물주위에서 자라는 다른 잡초를 뽑아내는 일을 김매기라고 합니다. 이렇게 김매기를 꼭 해야 내가 재배하는 작물이 제대로 숨을 쉴 수 있고 잘 자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게 됩니다.
그런데 뽑아내야 할 것을 뽑아내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자라나야 할 것이 자라지 못합니다. 농사도 이러한데, 우리 사람의 일도 그렇지 않을까요? 내 삶에서 뽑아내야 할 것이 참 많이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뽑아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삶에서 걷어내야 하고 걸러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 말씀 20-21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가장 거룩한 여러분의 믿음을 터로 삼아서 자기를 건축하고, 성령으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면서 자기를 지키고, 영생으로 인도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십시오.”

-건축하고, 기도하고, 지키고, 기다리기

말씀 잘 들으셨습니까? 이 말씀의 동사들(les verbes)을 잘 보십시오. 건축하고(세우고), 기도하고, 지키고, 기다리기입니다.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는 첫 걸음을 뗐다면 성령으로 기도해야합니다. 기도하면서 나와 우리와 교회와 사회를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서 영생에 이르도록 기다리며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입니다. 그 목표가 레위기에 따르면 “거룩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표현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완전하시듯 너희도 완전하라.” 입니다. “완전이 인간사에서 가능한가, 아닌가”는 우리의 질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완전을 향해서 나아가는 일입니다. 그러나 나아가기는커녕 돌아앉아서 ‘그것이 가능하냐, 가능하지 않느냐’를 논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나의 한 걸음으로 나아갔는가?’입니다.

-그리고 나누기

마지막 22-23절에 세 종류의 사람이 거론됩니다. 의심하는 사람, 불 속에 갇혀 있는 사람, 육체로 더러워진 사람입니다. ‘의심하는 자’는 믿음 안에서 머뭇거리는 사람입니다. ‘불 속에 갇혀 있는 사람’은 잘못된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육체로 더러워진 사람’은 죄지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손가락질, 질시, 질타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들을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함께 구원을 누리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여기 구원받은 한 사람이 있기에, 변화된 한 사람이 있기에 온 세상, 온 사회, 온 우주가 달라지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마치면서

성령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의 상한 마음을 위로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의 거친 습성과 잘못된 생각의 늪에서 건져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를 세상 속으로 용감히 나아가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상은 험하고 두려운 곳이지만 내가 거룩함에 이르도록 펼쳐진 장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으로 나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나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