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6일 사순절 제 1 주 (2023년-09호)

제목 : 세 가지 유혹 (Trois Temtations)
본문 : 창세기 2:15-17, 3:1-7, 로마서 5:12-19, 시편 32편, 마태복음 4:1-11

【마태복음 4:1-11】
그 즈음에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밤낮 사십 일을 금식하시니, 시장하셨다. 그런데 시험하는 자가 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하였다. »
그 때에 악마는 예수를 그 거룩한 도성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말하였다. «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서, 너의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것이다’ 하였다. » 예수께서 악마에게 말씀하셨다. « 또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라’ 하였다. »
또다시 악마는 예수를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주고 말하였다. « 네가 나에게 엎드려서 절을 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 » 그 때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하였다. » 이 때에 악마는 떠나가고, 천사들이 와서, 예수께 시중을 들었다.

-인사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예배로 모인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지금 이 시간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집중하여 설교자의 소리가 아니라 이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오늘 주일은 프랑스어로 통역이 동반된 시간입니다. 지금 프랑스어로 듣고 계신 분들 모두 축복하고 환영합니다. 이 시간이 여러분에게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순절, 기도의 시간

오늘 주일은 일 년 52번의 주일 중 조금은 특별한 주일입니다. 왜인가 하면 오늘 주일을 가리켜서 사순절 첫 주일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사순절은 교회의 중요한 절기입니다. 사순절은 예수께서 광야 한 가운데서 40일 동안 머문 기간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시간은 우리 사람의 일상의 편의에 맞춰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휴일이 있고, 기념일 날이 있습니다.
이와 다르게 교회는 교회만의 시간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시간표는 사람의 역사나 편의를 중심으로 짜여진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절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예수의 수난의 시간에 맞춰서 40일 간의 신앙의 여정을 떠납니다.

이 40일의 시간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간을 무엇보다도 기도의 시간으로 삼습니다. 기도의 최고의 장점은 아마도 이것일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더욱 깊이 들여다보게 됩니다. 기도해보셔서 아시겠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의 공통의 경험이기도 합니다. ‘기도’ (혹은 명상이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의 시간은 우리에게 특별한 순간을 제공합니다. 그 중 최고의 경험은 기도를 통해 내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게 됩니다. 좀 더 설명해 보자면, 내가 ‘나’라고 말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이 존재가 내가 생각하는 ‘나’입니다. 평범한 일상 가운데 나 자신이라고 여기는 ‘나’가 나의 모습의 전부라고 여기며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 이상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삶이 바쁘고 번잡해서, 때로는 게을러서 깊이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살아갑니다.

하지만 기도는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합니다. 내가 몰랐던 나를 보게 됩니다. 특히나 보고 싶지 않은 나를 보게 됩니다. 마주치고 싶지 않은 나의 기억과 감정과도 만나게 됩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혐오하던 모습을 내 안에서 발견하게 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무력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사순절은 자신을 보게 한다.

교회는 사순절 기간 동안 꼭 오늘 마태복음 4장의 말씀을 꼭 읽도록 권합니다. 여기에 앉은 우리 모두 역시 이 말씀을 오늘 처음 듣는 분은 아무도 안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 말씀을 많이 읽었습니다만, 이 본문의 말씀을 대할 때마다 가볍게 읽고 넘길 수 없는 텍스트라는 사실을 느낍니다. 본문이 무척이나 무겁게 다가옵니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하면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의 경험과 저의 경험이 꼭 같지는 않습니다만 오늘 말씀은 무엇인가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을 건드리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신화(Mythologie, Mythe) 한 두 개쯤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화는 사실 옛 이야기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그 신화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은 인간에게 모두 공통적인 이야기이기도 하고, 우리 인간의 본성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 가운데 시지프의 신화를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시지프는 자신의 속임수와 약은 행실로 인해서 벌을 받습니다. 그 벌이 무엇인가 하면 무거운 바위 덩어리를 산 위에까지 옮겨야 합니다. 하지만 그 바위 덩어리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집니다. 그러면 다시 산 위로 밀어 올려야 합니다. 시지프는 영원히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신화는 아마도 인간의 운명을 말하는 것일 겁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그 굴레를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이 무의미한 일을 반복해서 해야 하는 인간의 운명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4장의 말씀을 신화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본문이 갖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가 무척이나 무겁고 크게 다가옵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기 전 겪어야 했던 3가지 시험은 예수 혼자만의 시험이 아님을 성경은 말합니다. 인간은 영원히 이 시험 앞에 서게 됩니다.

-첫 번째 시험 :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악마가 예수에게 말하는 첫 번째 시험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라고 악마는 요구합니다. 이 말을 바꾸어 보면 이렇습니다. “네가 그리스도임을 스스로 증명해 보아라. 눈에 보이는 것으로, 당장 사람들의 입에 들어갈 빵으로” 이 말은 무척이나 설득력이 강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리스도임을 증명하라”는 요구는 예수님의 일생을 따라다닌 요구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예수가 커다란 이적을 사람들의 눈앞에서 보이고, 증명하는 것은 꽤나 그럴듯한 요구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의 가장 시급한 문제인 사람들의 굶주림을 해결할 능력을 보이라는 말이 얼마나 설득력이 강합니까? 악마의 이 요구를 조금 더 끌고 가보면 사람들을 배부르게 못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자격이 없다는 강한 비아냥이기도 합니다.

이 요구가 얼마나 강력한 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비극 중에 굶주림만한 고통이 있을까요? 인간의 역사 속에서도 이 주장은 설득력을 가져 왔습니다. 공산주의가 등장했을 때 그들이 주장한 슬로건은 “세상의 굶주림을 해결하겠다.”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이 슬로건이 구원의 약속의 소리로 들렸던 것은 당연합니다.

신앙인인 우리에게도, 교회에도 이 요구는 살아있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이룬 것이 하나님의 교회라면 무엇보다도 세상의 가장 시급한 문제, “빵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는가?”입니다. 교회도 이 문제에 솔깃합니다.

자, 오늘날 이 세상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살펴보십시오. 당신들의 지갑을 채워주겠다고 약속하는 사람이 메시아가 되는 세상입니다.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닙니다. 정치도 돈을 향해 움직이고, 교육도 돈 잘버는 사람을 만드는 일이고, 인간의 문화도 돈을 만들어내는 일에 집중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모두 이 악마의 유혹에 잘 속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즉 사람이 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사순절기에 우리의 삶의 방향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시험

악마는 예수를 데리고 성전 꼭대기에 세웁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서 뛰어내려라. 하나님이 천사들을 시켜서 너의 발이 땅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다.”
성전 꼭대기 모든 종교 권력의 정점을 상징합니다. 높은 곳에 올라서 너의 특별한 능력을 선보이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이 증명해야 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갑니다. 높은 곳은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곳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은 높은 곳에 올라선 사람의 능력, 그곳에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는 특별한 능력과 재능을 지닌 이를 좋아하고, 추앙하고, 나중에는 숭배합니다. 악마의 이 요구는 “하나님의 자리를 네가 차지하라”고, 너는 그럴만한 능력의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이름으로 세상의 모든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나를 높이셔서 사람들 위에 군림하게 하셨다는 논리가 바로 악마의 논리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나님은 시험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 특히 신앙의 영역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하며 사는 지도 모릅니다. “만약에 이번 일이 잘 되지 않으면 내가 하나님 당신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될지도 몰라요. 그러니 알아서 잘 해주십시오.” 과장된 저의 표현이지만 아니라고 말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영원하신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세상살이를 통해 이루려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세 번째 시험

악마는 높은 산으로 예수를 데려갑니다. 세상 나라의 모든 영광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 이 말씀이 누가복음에도 있는데, 누가복음에는 마태복음에 없는 말씀이 추가되어 있는데, 한 번 들어보십시오. “이것은 나에게 넘어온 것이니, 내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준다. car elle m’a ete donnee, et je la donne a qui je veux.” 악마는 이 세상 나라의 모든 권세와 영광이 자신의 손아귀에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니 찬양과 칭송을 받을 이는 악마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이 나의 경배의 대상이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누구를 경배의 대상으로 삼느냐는 다른 질문이 됩니다.

-마치는 말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 당한 시험은 먼 옛날 예수라는 이가 당했다는 시험 이야기가 아님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시대 직면한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빵을 주겠다는 이를 칭송합니다. 높은 곳에 올라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는 이를 숭상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손 안에 있다는 자만에 가득 찬 악마의 선언에 우리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악마의 요구는 분명합니다. 하나님 없이 인간들만으로 세상 질서를 세우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오로지 인간의 삶이란 물질적이고, 정치적인 현실만을 인정하도록 살아가라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악마가 우리로 하여금 얻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경배를 받는 대상을 바꾸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경배의 대상”은 누구인가를 분명히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삶에서 무엇인가를 숭배하거나 떠받들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우리의 삶을 참되게 하는 지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