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0일 성령강림 후 제 12주

예수님의 제자

마태복음 10장 2-4절

  1.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2.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3.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여기에 있는 우리들은 모두 그리스도인들이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어떤 사람들이며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는지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해서 점검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쭉 교회에서 지내오면서 느낀 점들이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목회하시는 것을 보면서 자랐는데 교회 안에는 참 벼래 별 사람들이 다 있구나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려서부터 늘 교회 사람들을 만나면 조심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아마 목회자 자녀로 살아온 사람이라면 저랑 비슷할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어떤 목사님과 이런 저런 대화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청년 때에 하나님께서 부르심을 따라 목사가 되겠다고 생각하셨던 분이십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목회자가 되는 것이 저의 장래희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하셨던 말씀이 자기가 성도로 있을 때 봤던 교회의 모습과 목회자가 된 후에 되어서 교회의 모습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성도로 있을 때에는 잘 몰랐는데 전도사로써 사역을 해보고 목사가 되니까 이상한 목회자들도 많고 성도들도 많고 그들의 모습에 상처받고 실망스럽다. 내가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말씀이었습니다.
그 목사님께 저는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지내오면서 별별 이상한 사람들도 많이 보고 목회자 자녀로써 교회에서 상처도 많고 그렇다. 그래서 애초에 실망은 별로 하지 않는다. 사실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는 여러 가지 경험과 상처 때문에 교회에서 성도들과 적당히 거리를 두게 된다.
사실 목회자로써 그러면 안되는데 늘 조심하려고 하다보니까 성도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어떻게 교회 안에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같은 그리스도인들인데 이렇게 다양한 생각과 다양한 삶의 태도가 존재할까?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는 어떤 사람들인가?에 대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제자들은 선택함을 받았다.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보통은 제자들이 스승을 찾아갑니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을 때에 제자들이 선생님을 찾아가지 선생님이 아무나 찾아가서 너 내 제자가 되라 이렇지 않습니다.
사실 에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실 때의 모습은 이상한 상황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내용이 너무 익숙하고 잘 알고 있어서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스승이 모르는 사람을 무작정 찾아가서 나의 제자가 되라 나를 따르라 라는 것은 일반적인 상황은 아닙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간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똑같습니다.
여기에 계신 분들 중에는 그 누구도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싶어서 찾아온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고 또한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도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종교는 사람들이 종교를 만들고 사람들이 신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은 다른 종교들은 사람이 누군가를 찾아가지만 예수님께서는 반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들도 모두 하나님의 선택된 사람들이며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고 계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신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을 제자로 찾아가셨나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 탁월한 제자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선생님들은 탁월한 제자들을 자신의 문하생으로 두고 싶어 합니다.
특히나 예수님처럼 선생이 제자를 찾아가는 상황이라면 탁월한 제자를 찾아 자신의 제자가 되길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찾아가신 제자들을 살펴보면 그리 탁월하다고 볼 수 있는 제자는 없습니다.
마가복음 4장을 보면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베드로와 안드레는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나요?
배움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부였던 것입니다.
생업을 위해 물고기 낚는 일을 해왔던 사람들입니다.
성경에서는 왜 예수님이 그들을 선택하시고 부르셨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셨을 때 어떠한 조건이나 기준이 없었습니다.
제자들에게 많은 학식이 있지 않았습니다. 탁월한 능력이 있던 것도 아닙니다.

갈릴리라는 작은 시골의 어부를 제자로 부르셨던 것을 보면 어떤 출신인지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제자가 다른 제자를 소개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빌립이 나다니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였습니다.
와서 보라 이 한 마디로 예수님을 소개했던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나다니엘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 안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하시며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이미 아시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성품은 어땠나요?
자신이 자랑할 것이 없어서 자랑은 하지 않았겠지만 자신들이 예수님의 우편에 있겠다고 싸웠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로마군에게 잡히셨을 때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들 도망갔습니다.
사도베드로는 자신은 예수님과 언제나 함께 할 것이라고 장담하였습니다.
사실 감정만 앞설 뿐이었습니다.
정작 예수님께서 잡히셨을 때에는 예수님을 저주하면 부인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곁을 지켰던 제자는 없었습니다.
멀리감치 떨어져서 그저 지켜볼 뿐입니다.
그들은 그리 강한 마음을 가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의 나이가 어렸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직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예수님보다 나이가 어렸습니다.
심지어 10대로 추정되는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사도요한을 10대로 추정하기도 하고 예수님의 12제자는 아니지만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도 상당히 어렸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런 미성숙한 사람은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부르실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그냥 부르셨습니다.
내가 어떤 출신인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이유 없이 나를 선택하시고 나를 부르셨습니다.
가끔 보면 와 어떻게 하나님은 저런 사람을 부르셨나?
어떻게 저런 사람이 기독교인이 되었지? 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제자를 부르실 때에 어떤 조건이나 자격이 필요하다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 같은 사람도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무 자격이나 조건 없이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들을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부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의 범위 스펙트럼을 보면 정말 극과 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셀롯인 시몬이 있습니다.
성경의 번역에 따라 열심당원으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그 때 당시에 열심당원 셀롯인이 사람들은 로마의 압제로부터 극렬히 저항하며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 백성들인 이스라엘이 회복하기 위해서는 악한 세력인 로마에게 극력하게 저항하며 게릴라적인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목숨을 걸고 항로마 독립운동을 했었습니다.
프랑스어로 레지스탕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는 또 어떤 사람이 있었나요?
세리장 마태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9장에서 예수님께서 마태를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마태와 세리들과 예수님과 제자들이 식사를 하는 장면을 보고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죄인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느냐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성경에서도 9장 10절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성경에서도 세리들을 죄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대표적인 죄인 두 부류가 나옵니다. 창기와 세리입니다.
창기는 돈을 위해 자신의 몸과 성을 파는 여성입니다.
세리는 돈을 위해 자신의 영혼과 하나님 백성을 판 사람들이 세리입니다.
세리는 단순히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앞잡이 정도가 아닙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포기하고 악한 권세에게 빌붙은 사람들이 세리입니다.
지금 우리 상황에서 보면 그리스도인들 중에 먹고 산다고 사탄에게 영혼을 팔아버리고 같은 기독교인들을 괴롭히는 그런 인간이 바로 세리입니다.
그 세리들 중에서도 장이니까 아주 나쁜 인간입니다.
저는 아직도 예수님께서 왜 이 두 사람을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독립운동가 시몬과 매국노 마태 이 둘의 조합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조합입니다.
제가 나중에 낙원에 가게 되면 정말 물어보고 싶습니다.
서로 극과 극에 있는 두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로 지내면서 어떻게 지냈을까?
셀롯인 시몬과 세리장 마태 둘은 서로 무슨 대화를 했을까?
둘은 친하게 지냈을까? 이런게 좀 궁금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셨을 때에 셀롯인 시몬과 세리장 마태 이 두 사람만 봐도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부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죄인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크나 큰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아무런 자격없이 조건없이 불러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특정 계층의 사람들만 모이는 교회는 건강한 교회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떤 제자들을 어떻게 부르셨는지 잘 알고 있다면 그 누구도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격이나 조건 없이 다양한 사람들을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예수님의 제자로써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다양한 사람들을 부르셨고 다양배경에서 부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늘 지지고 볶는 과정들이 있었습니다.
그 순수했던 초대교회조차도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소음들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부족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며 저마다 다른 생각들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불러주셔서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교회가 되며 예수님의 제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격 없는 우리들을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그저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에 어떤 자격을 두고 탁월한 능력의 제자들을 부르셨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아마 그들은 교만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런 학식이 있고 나는 이런 스승 밑에서 배웠다는 자부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높이기보다는 자신의 교만함을 드러냈을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그 좀 배웠다는 사람들이 되어서 교회의 가시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이도 예수님께서 부르셨던 제자들은 잘난 것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부족한 제자들도 예수님과 동고동락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였을 때에 부족했던 그 제자들은 권능을 받고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러 갔었습니다.
인간이 능력이 있어봤자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 부족해 보였던 제자들도 성령님께서 임하시니까 능력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 예수님의 제자들로 인해 지금 이 전 세계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을 믿고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난 사람 탁월한 사람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면 그 교회는 반드시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모두가 머리가 되려고 하고 머리만 커져버린 교회는 온전하게 설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통해 서로 보듬어주고 감싸 안아 줄 수 있습니다.
내 능력이 아닌 성령님의 권능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교회 안에서 누군가에게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는 조건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은 그 어느 누구라도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이런 생각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성도님들도 목회자들도 모두 부족한 죄인들이며 그 안을 들여다보면 실망할 것 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제자들의 삶의 목표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의 빛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라고 했을 때에 헬라어 원어를 보게 되면 apostolos 라고 합니다. 이 말 뜻은 파견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의 뜻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을 향해 파견된 사람들입니다.
비록 우리의 생각과 모습과 성격이 저마다 다를 지라도 세상에 나아갈 때에는 모두 예수님의 제자의 모습으로 나아갑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라는 단어로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설명합니다.
모이는 교회 이었을 때에는 나를 드러낼 필요도 없고 겸손한 모습으로 성도의 교제를 하고 흩어지는 교회로 세상 가운데 나아갈 때에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의 능력이 아닌 성령님의 권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자격 없는 우리들을 조건 없이 부르셨던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며 복된 제자의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