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서 연구 제5강
다시 읽는 출애굽기
오늘 우리는 출애굽기가 다루고자 하는 전체적인 의미를 살펴 보고자 한다. 지난 시간 우리가 이야기 나눈 대로, 출애굽기-신명기는 한 백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창세기가 한 조상의 이야기를 전하는데 목적이 있다면, 출애굽기-신명기는 한 설립자를 소개하고자 한다. 즉 모세의 일대기 형식이다. 출애굽기의 전개에서 우리는 모세라는 한 영웅의 등장,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의 설립, 여호와라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정체성이 소개된다. 즉 출애굽기 이야기는 세개의 정체(Identity)를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하나님(여호와)이 누구신가? 모세는 누구인가? 그리고 하나의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이 누구인가? 이 세개의 정체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출애굽기는 어떤 “이동/이주”를 전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출애굽기의 내용을 통해서 이해하고 있듯이 이집트에 머물고 있던 히브리인들이 (출 1:1-15:21) 이집트를 탈출해서 시내산에 이르는 (출 15:22-18:27) 과정이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차원에서 서술된다. 그때 히브리인이 시내산에 머물면서 이스라엘이 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공동체가 되는 사건(출 19:1-40)이 제의적이고 법규적인 용어로 풀이되고 있다. 출 2:23-25과 출 3:15-17을 읽어보자. 그러나 이런 사람들의 움직임/이동 말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동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동이다. 출 3:7-8 이다.
위에서 읽은 본문들은 설화체 즉 이야기체로 기록된 글이다. 이 글들에서 기록된 사건 보도는 출애굽이 무엇이고,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서술하는데, 즉 출애굽은 고통당하던 자, 히브리인들이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 땅에 이르게 되는 이동이다. 살 곳을 옮겨가는 수평적인 이주이다. 이 해방 사건을 일으킨 이는 하나님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해방 사건의 심부름꾼이다. 우리가 신앙적인 관점에서는 하나님의 구속 사건이라고 일컫지만, 사회사적으로는 한 집단의 집단적 탈출, 정치사적으로는 한 민족의 해방을 전하고 있다. 그러니까 출 1-18장이 전하는 이야기체의 글들은 하나님의 구속 이야기, 히브리 집단의 탈출 이야기,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 이야기이다. 출 1-18장 이야기는 한 민족의 탄생, 그 민족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 한 정신적인 지도자의 탄생을 증언한다. 한편 하나님의 이동을 소개하는 기사는 이집트 왕 바로의 세력으로 상징되는 억압의 힘을 물리치시고, 이제 통치자로서 당신의 백성을 다스리시려는 하나님의 의지(출 15:18)를 전달한다. 시내산 위에 계시던 하나님이 인간들의 삶의 현장 한 복판 속으로 내려와 당신의 왕국을 조성하시고 (출 19:6), 그들과 함께 만날 공간(회막)을 조성하려 하신다 (출 25:21-22 ; 29:43-46). 여기에 출애굽을 경험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계약 공동체로 변신하는 탄생이 있다.
출 19:1-3 을 읽자. 이집트를 떠나 수평적으로 이동하던 히브리인들의 발길이 시내산 앞에 머문다. 거기서 그들은 더이상 앞으로 전진하지 않는다. 거기서 그들은 산밑에 천막을 치고 머물게 된다. 우리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시내산에 머물면서 경험하고, 겪고, 실천하게 되는 일들을 기록하고 있는 본문을 시내산 전승 단락, 또는 시내산 법전 (출 19:1-민 10:10)이라고 부른다고 이미 공부하였다. 여기에 보면 백성은 머물고, 움직이는 자는 모세 뿐이다. 위로 시내산 위로 올라 간다. 하나님이 산 위에서 부르시기 때문이다. 곧 19 :1부터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산 위로 오르는 모세와, 산 위에서 들은 그분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기 위해 산 아래로 내려오는 모세의 행동을 읽는다. 이제 모세 그는 더이상 히브리인을 이끄는 해방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재자” 이다. 하나님 말씀의 전달자 이다. 무엇을 전달하는가 ? 그는 말씀의, 법의, 토라의 전달자이다. 이것은 최종 형태로 우리에게 편집되어 전해진 출애굽기가 전달하려는 출애굽기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말한다. 출 19 :4-6 은 말한다.
이것은 이집트에서의 탈출을 경험한 해방 집단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옮겨가는 순간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계약을 맺는다. 여호와와 이스라엘이 “더불어 사는(相生)” 약속을 맺는 것이다. 여기에 구속과 탈출과 해방의 목적이 드러난다. 해방이란 일회적 사건이 아닌 것이다.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삶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구속의 목적이란 “어떻게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지”에 있다. 과거의 구원 받은 날짜를 헤아리는 것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삶을 이루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히브리 노예들이 이스라엘 민족이라 불리고, 이스라엘이 거룩한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이란 출애굽의 해방 자체가 출애굽의 완성이 아니라, 즉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순간마다의 과정에서 해방받는 자가 해방 시켜 준 분의 뜻을 구현하며 사는 데에 해방의 목적이 있다. 이것을 이루지 못하는 한 해방은 미완성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어떻게 그들을 이끌어 냈는지에 대한 서사적 이야기인 1-19장의 글과 19-40장의 율법의 큰 틀을 연관하여 소홀히 다루지 않고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출애굽의 이야기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계약 체결에 그치는 않는다. 하나님이 계약을 맺으시는 데에도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계약 체결은 그 다음의 사건을 이룩해 내기 위한 준비 조건이다. 출 25:1, 8, 22을 읽자. 토머스 만이라는 구약학자는 이 귀절을 이렇게 해석하는데 주목할만하다. “하나님이 꿈을 가지고 계시다” 하나님이 성소에서 이스라엘과 만나기를 원하신다. 출 19:1-3의 읽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산 위에 계심을 알았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회중더러 “내가 너희 중에 거할 성소”를 지으라고 명하신다. 성소가 어디에 세워지는가 ? 회막 –만남의 장막-이 어디에 세워지는가 ? 산 아래이다. 산 아래 백성들이 지금 천막을 치고 머물고 있는 곳, 그곳의 한 복판에 세워지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회막에서 이스라엘과 만나시겠다는 것은 산 위의 하나님이 산 아래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것이다. 산 위의 하나님이 산 아래 회막으로 내려 오신다. 하나님의 하산(下山)이다 !
하나님의 하산, 산을 내려오셨던 것을 성서에서 기억해 보자. 사람들을 흩뜨려 버리거나 (바벨탑 사건), 멸망 시키기 위해서 였다(소돔과 고모라). 즉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내려 오신 것은 대개 심판의 의미이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이 내려오신다는 것은 하나님 스스로 당신의 백성으로 삼은 공동체 속에 거하시겠다는 목적이 드러난다.
그러기에, 출 19-40장의 법령의 의미는 이것이다. 법이란 어떻게 사느냐, 살아 가느냐의 지침서이다. 백성과 백성이 더불어 사는 원리, 하나님과 백성이 더불어 사는 원리이다. 거기에서 구원/해방 받은 공동체가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고, 하나님과 함께 회막에서 만나며, 거룩한 백성으로 완성되어 가는 원리가 있다. 회막의 건설은 출 40장에서 완성된다. 회막의 건설은 우리로 하여금 레위기 1 :1을 읽도록 초대한다. 이제 하나님이 회막에서 말씀하신다. 제사법, 청결법, 성결법을 제정하신다. 이 법들이란 하나님과 함께 살기로 작정한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더불어 살도록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 법들이란 결국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게 할 生을 위한 제도로서 이해하면 되겠다.
[출처] 구약성서연구 제5강 : 다시 읽는 출애굽기 (파리중앙교회) | 작성자 Pasteur Pa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