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서 연구 제7강 : 회막 공동체
지난 시간 다룬 시내산 전승 단락의 구조를 보다 잘 이해해 보기 위해, 다음의 표를 보자.
시내산 전승 단락의 구조 (출 19:1-민 10:10)
| Ⅰ. 서론 | 출 19:1-2 |
|---|---|
| Ⅱ. 시내산 사건 | 출 19:3 – 민 10:10 |
| A. 산에서 받는 여호와의 말씀 | 출 19:3 – 40:38 |
| 1. 준비 – 계약체결 | 출 19:3 – 24:8 |
| 2. 목적 – 회막의 건축 | 출 24:9 – 40:38 |
| a.회막의 건축공사 | 출 24:9 – 39:43 |
| 1)지시 | 출 24:9 – 34:28 |
| 2)지시의 실행 | 출 34:29 – 39:43 |
| b. 회막의 봉헌 | 출 40:1 – 38 |
| B. 회막에서 받는 여호와의 말씀 | 레 1:1 – 민 10:10 |
| 1. 여호와가 다스리는 공동체 구성 | 레 1:1 – 27:34 |
| a. 예배생활 | 레 1:1 – 16:34 |
| b. 사회생활 | 레 17:1 – 27:34 |
| 2. 여행을 위한 준비 | 민 1:1 – 10:10 |
| a. 진영 (캠프)의 구성 | 민 1:1 – 4:49 |
| b. 보충설명 | 민 5:1 – 10:10 |
지금까지 공부한 오경의 구조에 대한 하나의 해석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해방에서 성화에 이르기까지 어떤 궤도를 달려왔는지를 밝혀 왔다.
히브리인들의 삶이 이스라엘로 변화되는 이동과 함께, 이집트에서의 삶이 가나안 땅에서의 삶으로 옮겨지는 과정과 함께, 산 위에 계시던 하나님이 산 아래에 내려 오시는 극적인 이동이 본문의 해석에서 찾을 수 있는 바였다. 공부한 대로 해방(출애굽)이란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해방자가 해방의 감격을 누리는 자와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의 계약 체결을 마련하는 것에 그 그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해방자가 계약을 맺은 당신의 백성의 삶의 애환 속에 개입해 들어 오시는 “공간의 마련”(회막 건설)으로 치닫는다. 오경 속에 수록된 모든 법규들이란 이런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이룩하기 위한 하나님의 처방전이다. 즉 해방에서 성화(聖化)까지 !! 그것이 오경의 구성을 책임졌던 편집자의 신앙적, 신학적 의도로 여겨진다.
여기에서 우리는 여호와가 다스리는 공동체가 수행해야 할 “성결케 되려는 처방”을 조심스럽게 다시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 소위 성결법전으로 알려진 레위기 17-27장은 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동적인 의미이다. 쉽게 말하면 “성결은 무엇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너희는 성결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해도 되고, 안해도 그만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회막을 중심으로 형성된 예배의 공동체가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의무 조항이다. 레19:1-2, cf. 22:31-32 을 보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거룩해질 수 있는가? 레위기19:1-2의 본문은 19장 전체의 서론이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준수해야 할 규정, 즉 부모 공경과 안식일 준수(3절)로 시작해서 가난한 자에 대한 돌봄(9-10, 13-14, 15절), 이웃사랑(17-18절)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것은 오경의 성결과 성화가 단순한 개인적 차원의 윤리나 도덕이 아님을 시사한다. 구약성서 오경이 말하는 성결과 성화의 삶은 사회 윤리적 차원에서 완성되는 거룩이다. 이웃사랑의 구체적 실천까지 나아가는 거룩이다. 그렇지 않은 성화, 성결은 미완성의 성결과 성화일 뿐이다. 주목할 것은 레위기 19장(성결법)의 단락마다 동어 반복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말은 18절과 33-34절이 레위기 19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18절에서 동족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명령하고, 33-34절에서 그들에게 몸붙여 사는 외국인, 즉 가장 힘없고 가난한 나그네를 네몸처럼 사랑하라고 명령한다. “너희는 거룩하라”는 명령은 결국 가장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돌보는 생활에서 구현되는 삶인 것이다. 거기에 해방에서 성화까지, 정의에서 성결까지, 구원받음에서 사랑의 실천까지 나아가는 길이 있다.
신약성서 역시 성결은 사랑의 실천으로 압축된다. 예수의 제자로서의 삶은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다. (마태복음 5:44-48)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보자. 사순절 두번째 주일의 설교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 야고보서에 대한 두 입장이 있다. 하나는 그것을 지푸라기처럼 하찮은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마틴 루터). 카톨릭 교회의 공로, 행함에 대한 강조에 대한 반발로 시작한 종교 개혁의 시기에 행함으로 완성되는 신앙이란 주장은 지푸라기로 여겨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존 웨슬리의 야고보서 읽기는 이와는 크게 다르다. 웨슬리에 의하면, 야고보서를 언제 읽느냐가 중요하다. 우리의 신앙의 상태, 혹은 단계가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稱義, 義認) 받기 이전의 단계라면, 우리 인간의 공적, 선행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오해를 야고보서를 통해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칭의, 의인 이후의 단계, 곧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겪고 난 이후의 단계의 신앙 상태를 사는 신앙인이라면 야고보서는 믿음보다 행함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 감리교도는 구원의 완성을 완전(Perfection)으로 이해하고 있다. 즉 오늘 말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핵심 단어인 성화(聖化)이다. 어떻게 믿느냐 뿐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 역시 우리의 신앙의 문제에 있어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웨슬리가 개진한 믿음이 성화를 위한 출발이었듯이, 출 1-18장(출애굽 사건)이 출 19-40장(율법)으로, 그것이 레위기 1-27장(율법 중에서 성결 법전)으로 이어지는 성서의 구성은 출애굽 사건이란 곧 회막 공동체의 건설을 위한 출발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구약성서연구 제7강 : 회막 공동체 (파리중앙교회) | 작성자 Pasteur Pa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