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연구 제10강 : 왕을 세운 이스라엘 (사무엘서, 열왕기서)

히브리어 성서 구분법에 따라 전기 예언서의 두번째 부분에 해당되는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는 왕국을 세운 이스라엘의 삶을 담담히 보도하고 있는 성서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화에 하나님이 마지못해 왕정제도를 허락하신다. 물론 사무엘서에서는 왕정제도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말하는 본문이 있는가 하면 (삼상 9:1-10:16 ; 비교 13:3-14), 왕정제도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는 본문도 있다 (삼상 8:1-22 ; 10:17-27 ; 12:6-17). 전자는 왕이란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백성을 다스릴 영도자”(삼상 10:1)라는 입장이며, 후자는 왕이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이요, 이스라엘의 불순종의 표본이라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무엘서가 왕정제도에 대해 어정쩡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라고 평하기 보다는 이런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입장의 자료들을 감싸고 있는 본문의 틀이나 전반적인 분위기는 왕정제도 성립에 대하여 다분히 부정적인 입장인 것은 분명하다. 사무엘서는 일반적으로 사무엘이 왕이 다스리는 사회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입장을 갖고 있다는 것이 대부분의 학자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사울이 왕이 되어 일할 때 사무엘이 나타나 그를 꾸짖을 때 한 말은 그런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사무엘상 15장) 

그러나 삼상 10:1, 13:13-14을 읽어보자. 이 두 구절은 모두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게 되는 것을 우호적으로 쓰고 있는 본문들의 일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구절에 반복되는 문구, 즉 “백성을 다스릴 영도자” 왕으로 세우셨다는 히브리어 표현(알 나할라토 레나기드, 10:1), (레나기드 알 암모, 13:14)은 다름 아닌 “나기드”, 즉 사사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하고 엉뚱한 표현이다. 왕을 표현하는 단어를 사무엘서의 기자는 나기드, 즉 사사로 표현하고 있다. 왕을 허락해 주신 역사의 한복판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사무엘의 입을 빌어 “왕이 아닌 사사”를 세워 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왕이 아닌 사사 ! 그것이 애당초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영도자요, 통치자라는 것이다.

총체적으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왕이란 잘못 태어난 존재들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울, 다윗, 솔로몬 등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왕들도 바로 그런 당사자들이다. 솔로몬에서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에 이르는 모든 왕들은 이런 비극의 열매라고 성서는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왕조, 그것은 적어도 이스라엘에게는 잘못된 출발이었다. 사무엘상 8장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무엘의 아들들이 사사 노릇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삼상 8:1-3). 그래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사무엘을 찾아갔다. 그리고 이방 나라들처럼, 자기들에게 왕을 세워 주어, 왕이 자기들을 다스리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마음이 잔뜩 상한 사무엘이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다. 삼상 8:7-9 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무엘은 왕이 얼마나 백성들을 못살게 굴게 될 것인지를 조목조목 가르쳤다. 심지어는 “마침내 너희들까지 왕의 종이 될 것이다. 8:17” 고 경고하였다. 그럼에도 백성들의 대답은? 삼상 8:19-20 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렸다 !”(8:7) 여기서 신명기적 역사서가 말하는 이스라엘의 왕, 왕국, 왕권에 대한 비판을 엿볼 수 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왕의 통치를 요구했을 때, “이스라엘을 버리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서서히 시작된다. 참고로 구약학자 폴진이라는 사람은 이 구절을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유산되고 마는 생명체”의 비극이라고 말한다. “저들이 나를 버려, 저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다”는 하나님의 탄식에서 사무엘서의 기자는 “실패로 끝나 버리고 마는 하나님의 통치, 유산되고 마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내뱉고 있다. 우리는 사무엘서 상하권에서 사울의 통치가 다윗의 통치로, 다윗에서 다시 솔로몬의 통치로 계승되어 가는 과정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열왕기서 상하권에서 우리는 솔로몬 통치와 그 이후, 이스라엘의 왕국이 어떻게 쇠잔해져 가게 되었는지를 읽는다. 이스라엘 왕국사는 그 첫걸음을 내디딘 순간부터 멸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 나라의 운명이 기우는 현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왕국 시대에 등장했던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이 기울어가는 국운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잡아보고자 혼신의 힘을 다하던 하나님의 대변자이다.

한국 구약학자 중 민영진 (대한성서공회, 전 감신대 구약교수) 선생님은 이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히브리말로 왕은 “멜렉”이다. 그런데 같은 어원인 “몰렉”이란 단어가 있다. 몰렉은 히브리말로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을 뜻한다. 왕과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의 어원이 같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이스라엘의 왕정시대는 다름아닌 멜렉이 몰렉으로 경험되는 시기였다는 설명이다. 여호수아서에서 열왕기에 이르는 책들을 주의 깊게 읽어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짜여지기를 갈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기 예언서로 구분되는 신명기적 사관의 역사서는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이 패망한 후 폐허의 쓰라림에서 기존 왕국사를 정리한 글이다. 왕국의 패망 후 나라의 잘됨과 잘못됨이 다름 아닌, 하나님과의 언약을 준수하는 데 있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기에 전기 예언서의 첫번째 책인 여호수아서(24장)는 그것을 “이스라엘이 누구이고”, “이스라엘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언약 체결의 형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전기 예언서의 마지막 책인 열왕기서는 나라의 패망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반성하고 있다(왕하 17장).

출(出)애굽이 아닌 환(還)애굽

이제 구약성서의 열왕기서를 간략히 살펴보자. 열왕기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세운 왕국이 어떻게 해서 종언을 고하게 되었는지를 증언하고 있는 책이다. 책의 구조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Ⅰ. 솔로몬의 통일 왕국 시대 (왕상 1:1-11:43)

Ⅱ. 남북 분단 왕국 시대 (왕상 12:1-왕하 17:41)

Ⅲ. 남왕국 유다의 홀로서기와 패망 (왕하 18:1-25:30)

그러나 이 시기를 하나의 정신사적 측면에서 읽을 때, 우리는 이 스라엘의 왕국 시대가 다름 아닌 출애굽 이전의 삶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시대였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미 솔로몬 시절에 왕국은 풍요의 경제(왕상 4:20-23)를 유지하기 위한 값비싼 대가를 치루지 않으면 안되었다. 방만한 궁정의 살림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백성들이 감당해야 할 희생이 너무 컸다(왕상 4:27). 왕조의 번영을 상징하는 각양의 건축물들은 공사장에서 일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억압적인 부역의 산물이었다 (왕상 5:13-18 ; 9:15-22). 성전을 중심으로 한 종교 생활도 하나님의 본래 뜻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캄캄한 데 계시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자기가 세운 집, 성전에 계시기를 바라서” 웅장한 집을 짓고야 말았다(삼하 7:4-7 ; 왕상 8:12-13). 이스라엘 왕국이 막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풍요의 경제, 억압의 정치, 제의중심의 종교생활이 자리잡는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언제 이스라엘이 왕과 그 식구들을 먹여 살렸는가? 언제 이스라엘에 “강제 노역꾼”(왕상 9:15)이 있었던가? 언제 이스라엘에 하나님을 모셔두는 “붙박이 집”이 있었던가? 

이집트에서의 생활이 그러지 않았던가? 그때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이집트 왕을 위한 강제 부역에, 그를 위한 창고와 신전의 건립에 노예로 인생을 살지 않았던가? 그것이 싫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출애굽이라는 해방의 은총을 하나님이 주시지 않았던가? 그래서 소위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 땅에 와서 삶의 둥지를 틀게 되지 않았던가? 가나안땅에서의 왕정제도는 만나를 모두가 똑같이 먹으면서 살았던 시절(출 16:16-18)과 반대된다. 가나안에서의 강제노동은 자유로운 무역이 필요할 때마다 감당하였던 사사시대의 정신과 역행한다. 하나님을 위한 성전 건립은 실상 하나님을 그곳에만 계시는 것으로 간주하게 된 오해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출애굽 무리가 기억하고 있는 하나님의 성소는 회막이다(출 25-40장). 회막은 만남의 장소이다. 하나님이 자유롭게 이스라엘을 만나시고 거주하시는 공간이었다. 하나님을 붙들어 매놓는 붙박이 건물이 아니었다. 그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은 성전을 제쳐두고 “오히려 산당에서 분향하고 제사하는”(왕상 3:3, 16:6-8, 14:23 ; 왕하 12:3, 14:4, 15:35, 16:4 등) 죄를 저질렀다. 북왕국 백성의 죄를 고발할 때 들리는 말인 “여로보암의 죄”(왕상 12:25-33)란 소리도 하나님 숭배를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의 짓거리들을 비판하는 어투였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바알처럼 생각하던가, 아니면 바알신을 여호와 하나님인냥 믿고 따르던 온갖 풍속들이 판을 치던 시기가 바로 왕국시대였다. 예언자가 등장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예언자들이 그토록 출애굽시절을 노래하고 회상하였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예언자들의 눈에 비친 이스라엘의 왕들이 “이스라엘을 이교화”시키는 장본인이었던 것도 바라 이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스라엘의 왕국시대는 몸은 가나안 땅에 산다고 하면서도, 정신은, 삶의 양식은 이집트에서 살던 때와 하나도 다를 바 없던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 출애굽한 지 480여년 만에 (참고, 왕상 6:1) 이스라엘은 왕국시대라는 미명하에 “환(還)애굽”하고 말았던 것이다 ! 전기 예언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처절한 실패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솔로몬 통치시절까지만 해도 잠잠하던 고대 중동지방의 열강들이 솔로몬 사후 전개된 남북 왕조시대에는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히는 주범이 된다. 사마리아가 망하고 남왕국만 홀로 남아 잠시 독립해 있었지만, 그것도 요시아가 전사하면서 (왕하 23:28-30) 걷잡을 수 없는 패망의 내리막길로 치닫게 된다. 구약학자 베스터만의 이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오늘의 수업을 마친다. 

«여기서 우리는 신약과 구약 사이의 가장 독특하나 동시에 가장 중요한 유사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신약 한 가운데에는 한 죽음이 서있고 구약의 한 가운데에도 한 죽음이 서 있다. 신약에서는 그것이 한 인간의 죽음이지만 구약에서는 그것이 한 민족의 죽음이다.»[1] 


[1] . 베스터만(C. Westermann), 손규태, 김윤옥 공역, “천년과 하루”, p. 181.

[출처] 구약성서연구 제10강 : 왕을 세운 이스라엘 (사무엘서, 열왕기서) (파리중앙교회) | 작성자 Pasteur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