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역사에서 왕국시대는 여러가지 면에서 새로운 사상과 제도를 이스라엘 사회에 실험하고 실습하던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신앙 정신의 맥락에서 이스라엘의 왕국사는 “하나님의 통치”의 포기이자 거부였다. 종교적으로 그것은 “여호와 신앙을 바알신앙으로 대치하기”였다. 경제-사회적으로 그것은 이스라엘적인 삶의 태도가 “가나안적으로 살아가기”에 먹혀버리는 시기였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적인 전통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사조와 풍습이 자리잡게 되던 시기였던 것이다. 이 와중에 이스라엘 역사는 필연적으로 그 공동체가 “가진 자”와 “없는 자”, “있는 자”와 “없는 자”로 갈라지는 진통을 겪게 되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는 구약성서에서 흔히 듣게 되는 약자의 대표자들이다. 구약성서에서 “가난한 사람들”이란 이런 약자들이 속한 계층이다. 두말할 필요없이 가난한 사람은 약자라는 말이다. 여기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가 약자의 대명사로 불리워지게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이들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난한 자로 특별한 보호와 돌봄을 받아야 했던 사람들이다. 과부는 자기를 보호해 줄 남편이 없는 자들이다. 고아는 부모가 없는 자들이다. 그리고 나그네란 자기를 보호해 주고 돌보아 줄 부족이 없는 자들이다. 이들은 구약성서가 규정하는 소외 계층이다. 비참한 자들이다. 착취받는 사람들의 대명사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이스라엘 역사의 무대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을까? 왜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이들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가? 도대체 무슨 일이 이스라엘의 왕국사에서 일어났는가?
가나안에 정착하기 이전 이스라엘의 사회 구조는 지파사회라고 일컬어지는 부족사회였다. 이스라엘 지파사회가 기억하는 생활 양식이란 반(半) 유목민 생활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삶이었다. 이 시기 이스라엘 지파들의 사회생활의 특징은 개인보다 단체, 혹은 무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생활 환경이 광야나 스텝지역이었기 때문에 무리의 일치 단결이야말로 생존의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었다. 그 시기의 생존의 조건은 얼마나 물질을 많이 소유하느냐는 “사유 재산”이 아니었다. 개인이 얼마만큼 자기가 속해 있는 부족과 강한 유대를 맺고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더구나 계절과 목초지의 조건을 따라서 옮겨가던 생활에 있어서 양과 염소 등의 가축떼는 사유재산이었다고 해도, 그 가축을 먹이는 목초지나 우물은 어디까지나 부족의 공동 소유이었다(참조, 창 26:15-22). 봄이 되어 농사를 지을 경우, 농경지를 모든 가족이 나누어 가지기는 했지만, 그 농토의 마지막 소유권은 가족에게 있지 않고 씨족에게 있었다. 이러한 생활 양식에서, 이러한 사회 조직안에서 계층 간의 차이란 있을 수 없었다. 빈부의 격차란 더구나 불가능하였다. 씨족 전체가 가난하거나, 아니면 씨족 전체가 부자이었지, 결코 어느 한 두 사람이 가난하거나 부자일 수 없었다. 이 시기에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들은 가족과의 유대가 끊긴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상호 보호의 연대감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유목민들은 이들 가난해진 자들을 온 씨족의 공동 책임하에 돌보고 보호하였다. 그렇다고 보면 가나안 정착 이전의 이스라엘 사회상은 근본적으로 평등한 사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게 되면서, 그러니까 대략 주전 1200년 경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지게 된다.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은 더 이상 천막에서 살지 않았다. 더 이상 초원을 따라 전전하며 가축을 기르지 않았다. 그들은 큰 가옥을 짓고 살았으며, 농사꾼이 되던가, 목장주가 되었다. 땅을 차지하고 살았다.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농사를 짓되 자기 땅에 농사를 지었다. 경작지를 넓혀가며 지었다. 유목민의 관습에서 땅의 소유권은 개인에게 있지 않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씨족에게 있었다(레 25:23 ; 룻 4:1-11 ; 왕상 21:1-16). 그러나 가나안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은 땅을 토지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나의 상품이 되어 버렸다. 급기야 이스라엘 사회에는 땅에 대한 이중적인 견해를 지니게 되는 문제가 나타나게 되었다. 거대한 사유지를 확보해 가는 사람이 생겼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를 살아야 하는 사람도 생겼다. 재정부담에 쫓기는 왕들은 가나안 사람들의 토디를 사들이기 시작하였다(예를 들어 다윗의 아라우나 타작마당, 삼하 24:19-25 ; 오므리의 사마리아 산, 왕상 16:24).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고유한 전통을 어겨가면서 까지 이스라엘 동료의 땅도 넘보게 되었다(왕상 21장). 조세제도의 활성화도 백성들을 괴롭히는 데에 한 몫을 단단히 했다. 처음에 이 세는 일종의 자연세였다(왕상 4:7). 그러나 왕국 역사의 진행은 그것을 강제성을 띤 조세제도로 발전시켜 나아갔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굳혀가기 시작했던 왕국 사회는 이스라엘이 전통적으로 지녀왔던 연대성을 파기하는 것을 담보로 해서 이루어졌다. 이스라엘의 고유한 부족 윤리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그 자리에 지주 계층과 이들에게 억압 당하는 가난한 자들이 생겨나게 된다. 자기 땅을 잃고, 다른 사람의 땅을 경작하는 소작인들이 생겨나게 된다. 그것도 부족해서 품을 팔아야 하고 빚을 내어서 살아야하는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보편화되게 된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평등한 질서는 사라져 버리고, 그 자리에 경제적, 사회적으로 생존권을 위협받는 “비참한 사람들”이 출현하게 된다(암 5:7, 10-12 ; 8:4-6). 바로 여기에, 예언자들이 내뱉는 바르게 사는 사회,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게 사는 사회에 대한 비젼이 자리잡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이면 당연히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생의 방식을 상기시키는 설교가 거리에서, 성전에서, 왕궁에서 설파되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서 왜 예언자들이 출현하게 되었는지를 사회, 경제사적으로 읽어 보면 거기에는 유목민의 사회가 농경 문화로 정착하게 되면서 겪어야 했던 진통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예언자들의 출현 동기를 어느 하나의 시각에서만 읽어서는 안되지만 거기에는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요인들이 분명히 있다. 이를테면 이스라엘 사회에 예언자들이 등장한 데에는 가나안 종교 생활과 여호와 신앙이 혼합주의로 흐르게 되면서 필연적으로 나타났던 이스라엘 신앙의 타락과 왜곡이 분명 자리잡고 있었다. 즉 예언자들의 출현 배경에는 여호와 신앙의 맥락에서 혼탁한 종교생활을 강하게 질타하던 신앙적 관심이 도사리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예언자들이야말로 모세의 여호와 신앙을 새롭게 각색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사회적, 경제적 제도의 변천이라는 시각에서 이스라엘 역사의 흐름을 언급하고 지나가는 것은 앞으로 다룰 예언자들, 특히 주전 8세기 예언자들의 분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예언자들은 변두리 소외 계층의 옹호자들이다. 사회체제를 옹호하고 변호하는 자이기 보다는, 그것을 개혁하고 시정하는 일에 나선 사람들이다. 구약성서에서는 사회의 기존 질서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옹호하고 후원하는 전승이 있는가 하면, 억눌린 자들의 해방을 위해 기존 질서에 저항하고 반대하는 신앙적 비전도 있다. 전자가 다윗의 전승에서 발견되는 신앙 사조라면, 후자는 모세 전승에서 드러나는 정신적 경향이다.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은 이중에서 후자를 자신들의 신앙과 사상으로 삼는다. 예언자들은 모세의 해방과 평등 정신을 자기 시대에서 구체적으로 살고자 했던, 모세 전승의 아들들이다. 예언자들은 그 어떤 기존 질서도, 그것이 만약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삶을 파괴하는 질서라면, 하나님의 자유와 정의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그것에 반대한다.
흥미있는 것은 이 두 정신 사조 사이에 서로 대립과 갈등이 있었다는 점이다. 예언자 엘리야와 아합 왕의 대결(왕상 21장), 이사야와 아하스 왕의 대립(사 7:1-9:7), 아모스와 아마샤의 충돌(암 7:10-17), 여호야김 왕과 요시야 왕의 대조(렘 22:13-19)가 그것이다. 아합, 아하스, 아마샤가 옹호하는 여로보암, 여호야김은 모두 왕의 권위를 하나님의 가르침(토라) 위에 두고자 했던 사람들이다. 엘리야, 이사야, 아모스, 예레미야는 여기에 반대하고 저항한다. 왕은 백성을 정의롭게 다스려야 한다. 하나님이 정의로 세상을 다스리시고 공평으로 세상 기초를 세우셨기 때문이다. 왕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정의의 저울에서 예외일 수 없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 앞에서는 왕이라고 해서 면책특권을 갖지 않는다. 만약 왕이 자신의 이익과 실속을 위해서 백성들을 부당하게 희생시킨다면 그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왕은 가난한 자, 궁핍한 자를 보살피지 않으면 안된다. 바로 여기에서 예언자들은 한편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서서 약자의 옹호자, 대변자가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왕국 사회에서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히는 아픔을 감수하게 된다. 하나님의 심판은 가난한 자들에게는 은혜의 날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가난한 자들의 가슴에 한을 맺히게 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보복의 날”이다. 예언자들의 외침은 바로 “가난한 자”, “억눌린 자”, “슬퍼하는 자”에게는 은혜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나사렛 예수의 기쁜 소식이 예언자적으로 읽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출처] 구약성서연구 제11강 : 무너져 내리는 이스라엘의 전통 (파리중앙교회) | 작성자 Pasteur Pa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