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연구 11강 : 예언서
나름 힘차게 달려온 성서연구 시간이 오늘 히브리 성서 구분법에 따라 두번째 부분인 예언서에 접어 들었다.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서 /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스겔서, 그리고 12소 예언서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가 여기 예언서에 속한다. 이때 여호수아~열왕기서에 이르는 책들을 전기 예언서라고 부른다면, 이사야서~말라기에 이르는 책들은 후기 예언서라고 부를 수 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의 예언자들은 시기적으로 비록 늦은, 이스라엘 민족의 왕국사가 기울기 시작할 때 등장하였다. 반면 전기 예언서에는 엘리야, 엘리사, 미가야 등의 초기 예언자들의 활약상이 담겨져 있다.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이 아직 초반기의 길을 걷던 시절이 엘리야, 엘리사 등이 활동했을 때다. 엘리야, 엘리사 등의 초기 예언자들이 이스라엘 역사의 왕들을 상대로 벌인 신앙 경주의 이야기인 전기 예언서에 수록된 예언자들의 활동은 단편적이요, 구전을 모아 정리한 형태의 것들이다. 그러나 후기 예언자들의 경우, 예언자들의 삶과 그들이 선포한 말씀이 문서의 형태로 남아 있다. 예언자 자신이나, 그의 제자에 의해서 기록되고 정리된 문서를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후기 예언자들은 “문서 예언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같은 전기와 후기 예언서라는 구분은 히브리어 성서의 것이다. 헬라어 성서에서는 전, 후기 예언서라 부르지 않고 역사서, 예언서로 구분된다. 사실 여호수아에서 열왕기서에 이르는 책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땅 정착에서부터 시작하여 왕국의 형성과 발전, 분열과 쇠퇴를 역사적으로 기술해 간 책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 이점에서 헬라어 성서가 구분하는 역사서 라 부르는 것도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여호수아-열왕기서가 순전한 “역사기록의 책”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들 책은 무엇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누구에 의해서 일어났는지를 사실적으로 전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사실을 낱낱이 알리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사실의 의미가 무엇인지, 사실을 해석하여 적는데 관심이 있다. 생각해 볼 거리 !(역사는 사실인가, 진실인가 ?)
그렇다고 역사적 사실의 왜곡이라고 부를 필요까지는 없다. 차라리 “어떤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하고 있다고 보아야한다. 가나안에 정착하면서부터 그곳을 다시 떠나게 될 때까지의 과정을 반성적으로 기록했다고 보는 것이 정당할, 그런 성격의 역사서(신명기사가)이다. 신명기 역사서[1]라는 틀에서 가나안땅 정착 (여호수아, 사사기), 왕국의 성립(사무엘상, 하), 왕국의 불열과 패망(열왕기상, 하)에 이르는 과정이 소상히 소개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히브리어 성서는 헬라어 구약성서가 역사서라고 부르는 책들(여호수아-열왕기서)을 예언서라 부를까 ? 왜, 무슨 까닭으로, 히브리어 성서 기자는 이스라엘의 가나안땅 정착에서 부터 이스라엘 왕조의 흥망성쇠에 이르는 책들을 예언서로 간주하는가 ? 역사 이야기를 예언서라는 이름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히브리어 성서 기자의 의도는 무엇일까 ?
이미 우리는 창세기-신명기의 오경 속에 각인된 사회상이 “신정사회”(神政社會) 임을 말한바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가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직접 다스리시는 사회를 오경은 강하게 희구하고 있다. 그러나 사무엘-열왕기서에 보면 그 꿈이 무너지고 있음을 직시하게 된다. 구약의 역사서가 소개하는 이스라엘 사회는 군주(왕)가 이스라엘 사회를 통치하는 사회이다. 왕궁이 있고, 왕궁에 의해서 유지되는 종교가 있던 사회를 왕정국가라 한다.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 왕좌에 앉아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를 좌지우지 하고 있다. 여기에서 역사서가 예언서로 자리잡는 이유가 파악된다.
왕정제도란 본래 이스라엘 사회가 걸어갈 길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셔야 한다는 이야기(토라)의 측면에서 볼 때, 왕의 출현은 이들 관점에서 볼 때 낯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이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시절을 비판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예언서이다. 예언서는 하나님이 왕이심을 거부하고, 그 자리에 인간을 앉혀 왕국사회를 만들어 가고자 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야망의 드라마(삼상 8 :4-8)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왕국사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인간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다스리던 사회, 그러다가 결국 나라를 잃고 말았던 이스라엘의 비극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 왕국사는 예언서의 구실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이스라엘 왕조들을 비판했던 초기 예언자들의 활동이 담겨져 있어서 예언서라 부른 것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토라는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하는 사회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 지고, 모두가 그 속에서 평등했던 사회를 증언하고 있다. 전기 예언서에 속하는 책들은 왕의 통치와 그 속에서 이스라엘이 겪어야 했던 불평등 사회를 고발하고 있다. 신정사회와 군주사회의 대비 ! 평등사회와 그렇지 못했던 사회의 대립 ! 이것이 토라를 뒤이은 여호수아서,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서를 예언서로 편성시킨 정경상의 의미이다. !!
[1] . 신명기 역사관의 특징.
먼저, 네권의 책 전반에 흐르고 있는 신명기적 사상은 가나안주의를 염두해두고 모세의 입을 빌려서 기술한 사상이다.
첫째, 제의적 매음을 금지한다.
둘째, 많은 지방 성소가 가나안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제의를 단일화하려 하고, 제의 자체를 정화시키려 하려는 제의 정화 색채가 강하게 드러난다.
셋째, 어린 아이를 희생시키는 제사 종교 철폐를 주장한다.
넷째, 천체 숭배 사상을 철저히 금지하고, 신접자를 추방할 것을 주장한다.
다섯째, 토라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고, 하나님의 법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을 주장한다.(Mono-Yahwism!)
신명기 사가는 « 정말 야훼는 죽었는가? » 혹은 « 정말 우리는 야훼로부터 버림을 받았는가? »하는 자기비판적 질문에 대해 ‘아니다’라고 답하면서, 이스라엘이 지금 포로 생활을 하는 이유는, 그들이 야훼 하나님과 함께 시내산에서 맺었던 계약을 배신했기 때문이라고 보며, 이에 야훼가 화를 내어 잠시 동안 자기 땅인 팔레스타인에서 바벨론으로 쫒아내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야훼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불러 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을 위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 즉, 계약 준수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야훼께로 돌아서는 길이었다.
하나님의 구원사에 대한 관점을 가지고, 다시 쓰기 시작한 거대한 역사서 덩어리가 또 하나 있다. 이 역사서는 역사의 범위를 확대시켜서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다윗 왕조를 긍정한다. 이것을 우리는 역대기 역사서라 부른다. 역대기 사가는 신명기 역사서인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를 자신의 중요 대본(臺本)으로 삼고 거기에 맞추어 따라가면서 자신의 역사를 서술하였다. 이처럼 역대기 역사가 신명기 역사를 자신의 중요 대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왕조의 역사에 있어서는 신명기 역사와 거의 평행이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는데 신명기 역사가 여호야긴의 석방으로 끝이 나는 데 비해서, 역대기 역사는 그보다 더 후대인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포로귀환 공동체 시대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서 스룹바벨이 제 2성전을 짓고 그 성전에서 유월절 행사를 지키고 에스라가 종교개혁을 단행하는 등의 일까지 이어지고 있다. 결국, 역대기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서 모세의 법대로 살게 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역대기 사가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귀환 공동체와 계속 예루살렘에 남아 살았던 사람들과의 갈등을 (ex, 누가 참 유대인인가?, 순수한 하나님의 백성이 누구인가?) 과거 전승의 연속과 순수한 결혼의 보존을 통해서 해결하려 했고, 이스라엘의 주체성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역대기 사가가 강조하는 역사신학은
첫째는, 북왕국은 토라에 불성실한 왕국이었고 남왕국 유다는 참이스라엘의 합법적인 계승이라는 것을 나타내려는데 목적을 두었다.(다윗 왕조 선택사상!) 여기서 ‘응보사상’이 나오는데 이것은 신명기 역사보다 한층 더 발전된 해석의 단계로서 야훼의 계명을 준수한 남왕국 왕들은 복을 받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벌을 받는다는 해석이다.
둘째는,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이 포로 후기 예루살렘 성전 공동체라는 데에 촛점을 두었다.
셋째, 예루살렘 제의 중심의 신정정치를 열망한다. 특히, 종교적 유대를 결속시키기 위해 « 성전 제의 중심사상 » 을 역사해석의 관건으로 삼았다.
역대기 사가는 새로 지은 제 2의 성전 공동체에 모든 희망을 걸고 이 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역사, 신명통치의 역사를 가장 이상적인 세계로 꿈꾸면서 역사를 전개하였다. 예루살렘 제의 공동체가 소망이 되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던 솔로몬, 그리고 다윗을 이상화시켰다. 그리고 역대기 역사가는 이 두 왕이 세운 성전은 무너졌지만, 이런 과거 전승을 바탕으로 포로 귀환 공동체를 통한 신정체제의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었던 것이다. 실로, « 어떻게 하면 야훼 종교의 전승을 올바르게 이어갈 수 있겠는가! » 하는 물음에 대한 해명이 역대기 사가가 풀어야 될 그 시대 최대 당면 과제였다 하겠다.
[출처] 구약성서연구 제8강 : 예언서 (파리중앙교회) | 작성자 Pasteur Park
